[특파원 코너] 다시, 베세토

[특파원 코너] 다시, 베세토

송세영 베이징 특파원

입력 2024-02-28 04:07

지금은 흔적이 희미해졌지만, 베세토(BESETO)는 한때 한·중·일 협력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베이징과 서울, 도쿄의 영문 앞글자를 딴 데서 볼 수 있듯 각국의 수도를 중심으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한다는 취지가 담겼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보다 정치적 걸림돌이 적고 운신의 폭이 넓다. 오늘날 한·중·일 3국 관계에선 베세토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북한 핵과 미사일 실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대만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의 골이 깊다. 당분간 해결되거나 나아지기 힘든 이런 문제들로 인해 민간 교류와 협력이 위축되고 서로에 대한 반감과 혐오가 커지는 건 심각한 문제다.

한·중 관계는 한국이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응키 위해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배치한 이후 경색됐다. 특히 중국이 한한령 등으로 한국 상품과 대중문화를 보이콧한 후폭풍이 컸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볼 거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실제 양상은 달랐다.

한국 콘텐츠 기업들은 대중문화의 본거지인 서구를 공략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반면 중국은 한국 내 반중 정서 고조라는 역풍을 맞았다. 특히 한국의 2030세대가 중국에 대한 무관심 내지 반감을 갖게 만든 것은 큰 손실이다. 문화적 친밀감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드라마를 통해 중국어와 중국문화에 빠져든 한국의 ‘덕후’들은 음지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판결을 문제삼아 반도체 소재·장비 수출 규제에 나선 것도 비슷하게 전개됐다. 한국 국민 사이에 ‘노재팬’ 운동이 번지면서 일본 제품 불매에 일본 여행 취소가 잇따랐다. 일본 내 한류처럼 한국 내에서 팬덤을 확대해가던 일본 대중문화의 위세도 주춤했다.

반중·반일 정서를 통해 한국이 얻는 건 없다. 가까운 이웃나라와 교류, 협력이 제한되면 그 자체가 손해다. 문화든 경제든 교류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발전하고 풍성해진다. 한·중·일 갈등의 배경에는 역사나 영토 문제 외에 급변하는 국제질서와 강대국의 이해관계 등이 작용한다. 문제 하나가 해결돼도 다른 문제로 또 갈등을 빚을 수 있다. 그때마다 경제적으로 보복하고 문화 교류를 단절하고 여행 장벽을 높인다면 모두가 패자가 될 뿐이다.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말이 있었다. 한때 G2 경제대국에 오른 일본을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각과 그런 일본을 이기겠다는 한국인의 오기와 배짱을 동시에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를 오늘날 한·중·일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중·일은 모두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유럽이 산업혁명을 통해 역전하기 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을 누렸다. 서구 열강의 침탈 앞에서 한때 굴욕을 겪었지만 일본 한국 중국 순으로 근대화·산업화에 성공했다. 후발 주자였지만 나름의 길을 찾아 선진국이나 강대국 반열에 오른 것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강한 국력과 고도성장의 경험을 가진 3국이 협력한다면 동북아와 세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저출산 고령화 지구온난화 등 공통의 고민 해결을 위해 지혜를 모을 수 있다.

국제질서가 요동치거나 정치·외교적 갈등이 거세지더라도 민간 교류와 협력은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전통을 세워야 한다. 중앙정부가 어렵다면 베세토처럼 지방정부나 민간단체가 앞장서야 한다. 문화 교류와 여행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벽부터 파격적으로 낮춰야 한다.

송세영 베이징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