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책 중독자 자가 점검 목록

[오후 3시의 헌책방] 책 중독자 자가 점검 목록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입력 2024-03-02 04:05

헌책방과 새 책 파는 가게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헌책방엔 책 중독자가 자주 온다는 사실이다. 도서관, 북카페, 서점, 헌책방 등 책이 있는 곳은 많다. 그런 곳에 가는 사람들은 물론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책이 쌓인 모습만 봐도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똑같은 장면을 보고도 완전히 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단지 책을 좋아하는 것과 책 중독자가 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나는 20년 가까이 헌책방에서 일하며 많은 책 중독자를 만나고 그들을 관찰해 왔다. 놀라운 것은, 대개의 책 중독자들이 “에이, 나는 책 중독까지는 아니에요”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는 거다. 아니면 정말로 자신이 책 중독자인 줄 모르거나. 어쩌면 후자 쪽이 책 중독자의 세계에선 좀 더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그동안의 내 경험과 실제 책 중독자 손님의 의견을 반영한 책 중독자 자가 점검 목록을 선보인다. 친구나 가족 중에 혹은 본인 스스로 책 중독자인지 의심이 든다면 다음 목록을 잘 살피기 바란다.

①현재 집에 책이 몇 권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②책을 산 사실을 가족에게 숨긴 적이 있다. ③있는 책도 다 읽지 않았는데 또 책을 사들인다. ④책 냄새 맡는 걸 좋아한다. ⑤다른 집에 초대받아 가면 책부터 눈에 들어온다. ⑥다른 사람에게 책 선물을 한 적이 있다. ⑦책을 안 사더라도 달마다 한 번 이상은 오프라인 서점에 들른다. ⑧헌책방에서 뜻밖의 책을 찾아내 기뻤던 기억이 있다. ⑨이미 있는 책인 줄 모르고 같은 책을 두 번 산 일이 있다. ⑩가족이나 친구가 내게 책 좀 그만 사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상의 열 가지 목록 가운데 솔직히 5개 이상만 해당하여도 책 중독자라고 부를 만하다. 7개 이상이라면 누가 봐도 당신은 책 중독자니까 겸허히 받아들이기 바란다. 3개부터가 경계다. 바로 내일부터라도 책 중독자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크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면 목록에서 한두 개만 표시한 사람은 책 중독자에서 자유로운가 하면, 절대 안심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한 개만이라도 해당 사항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평범한 독서가는 아닌 셈이다.

모름지기 해가 바뀌면 새로운 목표를 하나쯤 세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며칠 전에는 한 손님이 우리 헌책방에 와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올해는 책 사는 걸 줄이고 가정생활에 좀 더 집중하겠다고. 그러면서 책을 15만원어치나 샀다! 그는 이제 책을 안 사겠다는 다짐을 한 기념으로 책을 산 거라며 변명했다.

나는 그가 한 달도 넘기지 못하고 다시 그만큼의 책을 사러 헌책방에 들를 것이라고 장담한다. 책 중독자는 어쩔 수 없다. 달리 중독이겠는가. 그래도 나쁜 것에 빠지는 중독보다는 책 중독 쪽이 훨씬 나은 게 아닐까. 사실 이런 자기합리화도 책 중독자의 전형적인 태도다. 아무렴 어떤가,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르는 것처럼 책이 있으니 책과 함께 살 뿐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