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그래도 플랫폼은 규제해야

[데스크시각] 그래도 플랫폼은 규제해야

권기석 경제부장

입력 2024-02-29 04:06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한 뒤 ‘전면 재검토’를 발표하기까지 과정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이다. 지난해 12월 입법 추진 공식화 이후 논란이 일자 지난달 말 공정위 한 간부는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지금 입법하지 않으면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 같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공정위는 하지만 2주 만에 “한 번 더 고민하고 검토하겠다”며 입장을 180도 바꿨다. 이후 플랫폼법 논의는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재추진하더라도 4월 총선이 끝난 뒤에야 가능할 것 같다.

구글, 네이버 등 공룡 플랫폼의 반칙 행위를 막기 위한 플랫폼법이 좌초된 데는 일차적으로 공정위 책임이 크다. 규제 대상인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를 두고 공정위는 시종일관 어정쩡한 모습을 보였다. 시장은 누구를 겨냥한 법이냐고 물었지만 정확한 기준을 내놓지 않은 것이다.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다수의 시장 참여자들이 공정위에 등을 돌렸다. 법안 취지에 찬성하는 측은 규제의 칼날이 무뎌지는 것을 우려했고, 반대하는 측, 그러니까 거대 플랫폼들은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 여론전을 벌였다. 반대 이유 중 ‘국내 사업자만 역차별받을 수 있다’ 등 일부는 이치에 맞지 않아 보였지만 지금까지 결과는 공정위의 완패다. 거대 공룡들을 상대로 한 싸움이므로 타깃을 명확히 한 뒤 그중 몇몇과 신속한 기동전을 벌였어야 했는데 공정위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플랫폼 법안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느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럽연합(EU)은 플랫폼법과 비슷한 디지털시장법(DMA)을 이미 제정해 다음 달 시행을 앞두고 있는데, 벌써 효과를 내고 있다. 애플은 앞으로 자사 앱스토어가 아닌 다른 앱스토어에서도 앱을 내려받을 수 있게 했다. 아이폰 탄생 이후 처음 있는 일로, 일부 외신은 ‘역사적’이라고 표현했다. 구글도 달라지고 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검색 도구를 구글이 아닌 것으로 쉽게 바꿀 수 있게 했다. 맞춤형 콘텐츠·광고를 위해 데이터 수집을 할 때 이용자 동의를 한 차례 더 구한다는 방침이다. 호텔 등 상품 검색 결과와 관련해선 가격 비교 사이트로 이동할 수 있는 링크를 제공하고, 항공편 검색 서비스 ‘구글 플라이트’는 없애기로 했다. 모두 DMA를 적용받는 유럽에서만 일어날 일들이다.

플랫폼 사업은 ‘혁신’으로 생활에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주지만 한번 특정 생태계를 장악하면 그 사업자는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다. 알파벳이 유튜브 프리미엄 가격을 한 번에 40% 이상 올려도, 배달의민족이 입점업체의 배달비 부담금액을 마음대로 정해도 이를 쉽게 거부하기 어렵다. 생태계에 익숙해지도록 길들었고, 그곳을 벗어나면 생존이 어렵게 판이 짜였기 때문이다.

생태계 선점이 중요한 탓에 신규 사업자들이 변칙 행위를 하는 일도 잦다. 최근 급성장한 중국의 이커머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국내에서 판매가 금지되거나 제한된 상품을 판매한다. 테무는 가입만 하면 무료 사은품을 준다고 해놓고 다른 사람을 신규 회원으로 가입시키도록 유도하는데, 그 조건이 명확하지 않다. 문제가 다분해 보이지만 국내에는 이런 행위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무엇보다 플랫폼 사업자의 반칙 행위는 이미 피해가 발생하고 난 뒤에야 규제 당국의 조치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지배적 사업자와 금지 행위를 미리 정해 피해를 예방하겠다는 게 플랫폼법의 골자였다. 이 법은 당장은 입법 타이밍을 놓치고 동력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막대한 문제를 일으킬 플랫폼 독과점에 대한 규제 강화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

권기석 경제부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