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밸류업’이 성공하려면

[국민논단] ‘밸류업’이 성공하려면

김주영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입력 2024-03-04 04:06

뚜렷한 지배주주 있는 한국에
강제성 없는 프로그램 먹힐까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등
근본적 제도 개혁 해야 '성공'

적대적 M&A 전례 없는데
경영권 추가 강화는 말 안돼

외국인 투자자들 "이번이
한국 증시의 마지막 기회"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지난달 26일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을 공개했다. 방안에 따르면 모든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해 연 1회 자율 공시할 것을 권장한다. 정부는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으로 주가를 올린 기업에 법인세 감면이나 소각 비용 손금 인정 등 혜택을 줄 방침이라고 한다. 기업가치 우수기업으로 구성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나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의 출시계획도 포함됐다. 윤곽이 드러난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엇갈린다. 밸류업 발표가 있던 지난 1월 26~29일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7972억원, 개인이 1506억원어치를 각각 매수한 반면 기관은 8725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코스닥시장에서도 외국인과 개인이 2036억원, 2598억원씩을 사들였지만 기관은 3748억원어치를 매도해서 주가가 약세를 보였다.

강제성 없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실망감에 시장이 약세를 보였다는 평가도 있지만 밸류업 발표 이후에도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상당 규모의 순매수를 한 것은 밸류업에 대한 기대가 여전함을 의미한다는 평가도 있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정작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많은 외국인투자자는 ‘이번이야말로 한국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입을 모은다. 선거를 앞두고 주식투자자들의 환심을 얻으려는 ‘총선용’ 정책으로 그치거나 근본적 개혁을 외면한 보여주기식 캠페인에 그친다면 실망한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를 떠나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 외국인 펀드매니저는 일본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취했던 ‘소프트한’ 접근 방식이 성공을 거뒀던 이유가 일본기업의 소유구조가 우리 기업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면서 우리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한다. 일본기업에는 대체로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지배주주가 없지만 뚜렷한 지배주주가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에 단지 일반주주들을 ‘착하게’ 대하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이 궁극적으로 성공하려면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이사의 전체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와 공평대우 의무를 상법에 명문화하는 것이 그 첫걸음일 수 있다.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 소각하도록 의무화해 자사주를 이용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도록 하고, 합병이나 기업분할, 주식교환, 소수주식 강제매수 시 일반주주들을 헐값에 축출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지난해 금융발전심의위원회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제안했지만 결국 채택되지 못한 데서 보듯이 기득권을 가진 쪽의 저항은 만만치 않다.

밸류업을 빌미로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오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선진국에서 이미 퇴출돼가고 있는 차등의결권, 황금주, ‘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에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개혁을 추진할 때마다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개혁에 역행하는 제도 변화가 이뤄지곤 했다. 외환위기 직후 소액주주 권리가 강화됐지만 지주회사 규제를 파격적으로 완화해 대주주들이 지배지분을 한층 강화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구조의 유연한 변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포괄적 주식교환, 기업분할, 소수주식 강제매수 제도 등을 도입했는데 대주주들은 이를 통해 소수주주들을 헐값에 축출했다. 기업자금 조달 수단을 다양화한다는 명분하에 도입된 신종 주식들은 일반주주들의 지분을 희석하고 경영권을 고착화하는 데 기여했다. 적대적 M&A는 시장의 효율성을 증진하고 주주가치를 증대하는 등 유익이 크지만 우리나라에서 실제 주요 기업의 적대적 M&A가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시도된 사례조차 드물다. 그런데도 ‘적대적 M&A 위협론’은 늘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저지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고 있다.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를 위해 밸류업이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제도개혁 없이 밸류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정말 이번이 한국증시의 도약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김주영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