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이승만 외교와 ‘건국전쟁’

[글로벌 포커스] 이승만 외교와 ‘건국전쟁’

마상윤(가톨릭대 교수·국제학부)

입력 2024-03-04 04:01

뜻밖의 이승만 열풍을 일으킨 ‘건국전쟁’ 관람 대열에 동참했다. 한국외교사에 관한 관심에서 화제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승만 대통령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궁금했다. 영화는 이승만을 건국의 영웅으로 묘사한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탄생과 유지가 그의 선견지명과 의지에 크게 덕을 보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승만은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했고,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이끌었으며, 한·미동맹을 체결해 안보와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한·미동맹은 한국에 별 관심이 없는 미국을 상대로 얻어낸 최대의 외교 성과였다.

그러나 이승만 영웅화가 2024년의 대한민국에 무슨 의미가 있고 소용이 될 것인지는 차분히 생각해 볼 문제다. 역사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평가해야 한다. 또 섣불리 역사의 교훈을 도출해 오늘에 적용하려 해서도 곤란하다.

‘건국전쟁’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내용이 몇 개 있는데, 필자가 특히 의아했던 것은 김구에 대한 평가다. 김구는 북한의 제의에 응해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38선을 넘어가 평양에서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 회의는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됐고, 외국군 철수, 임시정부 수립, 총선거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동성명서가 발표됐다.

김구는 분단을 막으려 했던 민족주의 지도자로 인식되지만 영화는 이런 인식을 뒤집는다. 김구가 북한의 남침을 예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외국군 철수 요구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김구에게 용공 혐의를 두는 근거로 같은 해 7월 서울 주재 중화민국 공사 류위완(劉馭萬)과의 대화 기록이 인용됐다.

영어로 작성된 대화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화의 초점은 김구에게 이승만이 주도하는 남한 단정에 참여하라는 류위완의 권유였다. 김구는 이를 물리친다. 남한에 정부가 세워지면 북한에서 바로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이고, 이렇게 따로 정부가 세워지면 소련은 북한군을 이용해 남침할 텐데 이에 대한 비난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단정에 참여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즉 김구는 분단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분단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또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순진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가 용공 통일을 의도했다는 주장은 과도하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승만 외교의 또 다른 측면은 그의 전투적 반공주의와 강경한 반일 자세가 미국과 끊임없는 갈등을 유발했다는 사실이다. 1954년 7월 말 미국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미 의회 연설에서 공산주의 세력을 타도하기 위해 극동에서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에 대한 공격까지 언급했다. 연설 중 많은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전쟁 주장에 대한 미국의 속 반응은 차가웠다. 정상회담에서는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촉구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일본과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견이 강경 대립하며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은 이승만 시대와는 판이하다. 이승만의 거친 외교에는 약소국으로서의 불가피성이 있었다. 통일을 위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침으로써 미국의 안보와 경제 지원을 확보했다. 또 갓 독립한 직후여서 일본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글로벌 중추 국가 대한민국이 따라야 할 외교는 아니다. 오히려 이승만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높이고 우방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갈수록 험난해지는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나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후손들의 대한민국을 하늘에서 자랑스럽게 지켜볼 것이다.

마상윤(가톨릭대 교수·국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