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일본의 ‘잃어버린 35년’은 끝났나

[가리사니] 일본의 ‘잃어버린 35년’은 끝났나

김철오 국제부 기자

입력 2024-03-04 04:08

닛케이지수 34년만에 경신
증시 바깥은 다른 풍경
화양연화 돌아왔다고?

일본 경제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절을 꼽는다면 1989년을 빼놓을 수 없다. 그해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은 일본 전신전화공사(NTT). 그 아래로 일본 4대 은행이 세계 시총 5위까지 남은 자리를 채웠다.

미국에서도 핵심 산업 1등 정도는 돼야 일본 기업들과의 경쟁이 가능했다.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애플에 견줄 수 있는 당시 세계 최대 빅테크 기업 IBM, 석유 기업 엑슨(현 엑슨모빌), 가전기기 제조사 제너럴일렉트릭만이 세계 시총 10위권에서 나머지 모든 순위를 차지한 일본 기업들과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일본 부동산 개발사 미쓰비시토지는 그해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를 8억4600만 달러에 사들였다. 뉴욕 마천루의 상징을 빼앗긴 미국인들은 ‘제2의 진주만 기습’이라며 충격을 받았지만, 당시 일본의 세계 자산 쇼핑은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 ‘해바라기’는 그 2년 전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4000만 달러를 내민 일본 보험사 야스다화재해상에 팔렸다.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한 것은 골목상권도 마찬가지였다. 오사카에서 한 끼 식사를 차려낸 주방장·종업원에게 팁으로 10만엔을 찔러주는 일이 허다했다. 도쿄에서 대졸 예정자는 기업 한 곳의 면접비로 많게는 5만엔을 받았다. 그렇게 시장에 돈이 풀려도 인플레이션은 오지 않았다. 엔화 강세로 수입품을 값싸게 들여온 덕이다.

그해 마지막 업무일인 12월 29일은 일본 경제의 클라이맥스였다. 일본 증권시장의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그날 장중 3만8957.44까지 치솟았고, 3만8915.87에 거래를 마쳤다. 앞선 10여년 동안 600%나 성장하며 연일 고가를 새로 써온 닛케이지수지만, 4만 선을 뚫을 기세로 세밑 마지막 거래일까지 강세를 이어가자 도쿄증권거래소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그날 장중 고점과 마감 종가는 1950년 닛케이지수를 산출한 뒤 그때까지 도달하지 못한 역사상 최고가였다.

희망과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일본 경제의 화양연화.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닛케이지수는 1990년으로 넘어가자마자 전년도 마지막 거래일 종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해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에서 시행된 고강도 주택담보대출 제한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부동산·주식 시장의 냉각 속도는 정부·중앙은행의 정책 실패만으로 설명되지 않을 만큼 빨랐다.

일본은 10년이 지나서야 ‘거품 붕괴’를 깨달았다. 2005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인구 비중에서 20% 이상이 65세 이상)에 진입하고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재난까지 발생하자 잃어버린 10년은 20년으로, 다시 30년에서 35년으로 멀어졌다. 일본에서 한때 자국 증권시장은 ‘오와콘’(끝장난 콘텐츠)이라는 냉대를 받았다.

탈출구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열렸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찾아온 탈세계화와 공급망 붕괴는 일본 경제에 기회로 다가왔다. 2010년대 아베노믹스의 엔저 기조로 조금씩 회복하던 닛케이지수는 2020년대 들어 급등했고, 지난달 22일에는 기어이 1989년의 최고점을 뚫고 올라갔다. 닛케이지수는 지난 1일 3만9910.82에 마감돼 4만 선의 문턱까지 다가갔다.

일본 종합상사·반도체 업황 개선, 오랜 엔저로 유입된 외자, 정부의 자산시장 부양책이 닛케이지수를 1989년보다 높은 위치로 올려놓은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증권시장 밖을 보면 조금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유통기한을 넘긴 10엔짜리 빵을 자판기에서 뽑아 먹고,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이중가격제’를 논의하는 지금의 일본은 지난 세기 거품 경제기에 상상하지 못한 미래였을 것이다. 물가상승률은 1982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3%대까지 치솟았고, 일본은행은 2007년을 끝으로 시도하지 않은 기준금리 인상을 준비한다. 일본의 30대 이하는 고물가를, 만 17세 이하는 금리 인상을 경험하지 못했다.

김철오 국제부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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