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우후죽순 AI 만능의 시대

[뉴스룸에서] 우후죽순 AI 만능의 시대

김경택 산업1부 차장

입력 2024-03-04 04:08

얼마 전 찾아간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의 미래기술관은 일부 공간이 이 빠진 것처럼 비어 있었다. 이곳은 증기기관에 이어 전기, 컴퓨터 등을 거쳐 인공지능(AI) 기술로 나아간 산업혁명 역사를 소개한다. 미완성인 곳은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보여주는 전시 공간이었다. 현재진행형인 AI산업 발달상을 반영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였다. 전시관은 조만간 채 완성되기 전에 다시 리모델링을 거칠지 모른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AI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의 기술은 새 개념을 정리할 새도 없이 그다음 기술로 넘어간다. 기업은 기술 경쟁에 뒤처질세라 AI를 접목한 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1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CES)뿐 아니라 지난달 세계 이동통신 박람회(MWC)와 북미 최대 주방·욕실 전시회(KBIS)에서도 관심은 AI에 집중됐다. 가전업체도, 통신업체도, 주방업체도 업종 가릴 것 없이 모두 AI 기술 혁신에 사활을 걸었다.

‘AI는 어디에나 있다’는 말은 행사장에 걸린 광고 카피에 그치지 않는다. 전국의 크고 작은 지방자치단체 사업 리스트에 AI가 등장한다. 강원도 한 지자체는 최근 실종사건 발생 시 CCTV 검색에 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AI 고속검색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1억9900여만원을 투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경남의 다른 지자체는 AI를 활용해 옛 토지대장을 한글화하는 사업에 1억여원을 쓰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AI 기반의 산불 감시 시스템 개발을 위한 연구 용역에 1900여만원을 편성한 지자체도 있다. 신기술을 활용한 업무 효율화에 적극적일 필요는 있다. 그러나 사업 타당성을 면밀히 따지지 않는다면 허투루 예산만 불린 사업이 우후죽순처럼 추진될 게 뻔하다. 이를테면 어르신 건강 보조 기기를 지원하는 일에 ‘AI 기반’이라는 말만 갖다 붙이는 식의 무늬만 AI 사업들 말이다. 이런 사업은 예산 규모만 제쳐놓고 보면 걸음 수와 혈압 측정 등을 위한 스마트워치를 지원하는 등의 기존 사업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물론 공공사업의 성공 여부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신기술 광풍에 섣불리 올라탄 사업의 성공 확률이 낮다는 점이다. 지자체들이 수천만원부터 수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들여 구축했던 메타버스 플랫폼 대부분이 ‘사이버 흉물’로 전락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 확산기에 나타난 메타버스 열풍에 편승해 신사업을 추진했던 지자체들은 헛돈만 날린 셈이다. 공공배달 앱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수수료를 챙기는 민간 배달 앱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지자체가 잇달아 내놨던 공공배달 앱은 어느새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건 결국 민간의 몫이니 도전적 공공 프로젝트는 자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정보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어설픈 AI 만능주의는 세금 낭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민간의 AI 기술 발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공공 정책이나 예산 편성 방향이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된다면 결과적으로 민간 기업의 혁신 역량은 떨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기업은 공공사업 수주나 정책 지원에 힘입어 성장동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름만 혁신인 공공사업이 많아질수록 진짜 기술 기업보다는 그럴듯한 비즈니스 수완만 내세운 기업이 득을 볼 수밖에 없다. 요즘 어디에서나 유행하는 AI의 장래가 그리 밝게 보이지 않는 이유다.

김경택 산업1부 차장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