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덕의 AI Thinking] 닥터 AI, 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 정신’ 되찾아줄까

[여현덕의 AI Thinking] 닥터 AI, 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 정신’ 되찾아줄까

입력 2024-03-05 04:03

신속·정확성 뛰어나 시간 절감
시·공간 구애 없이 맞춤 서비스
의사에겐 시간 만들어주는 선물
인류 위한 창조적 일 매진 가능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일부)

사진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세스의 선물을 거절했다는 전설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1792년 프랑스 화가 지로데가 그린 유화.

얼마 전에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7인의 과학자, 의사, 엔지니어 등이 환자에 대한 의무를 다짐하며 의료 벤처기업 ‘히포크라틱AI(Hippocratic AI)’를 창업했다. 히포크라테스라는 사명을 붙인 이유는 ‘환자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고귀한 의사 윤리강령을 되새기고자 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틱AI 측은 환자 고객이 의료 시스템의 최종 사용자라는 점을 되새기면서 의료 종사자 ‘400만명 부족’(WHO 통계)에 대비해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하고자 했다. 즉 AI가 의료인력 부족에 대응하고 또 현재 의료진의 작업량을 줄여주어야 의사는 환자들의 암과 난치병 치료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병원 여러 분야에 도입된 AI

현재 AI는 시스템 통합·자동화, 커뮤니케이션 자동화, 수술 지원, 고객 지원 등 여러 요소에 걸쳐 적용된다. 존스홉킨스병원 역시 빠른 임상 시스템, 의료 데이터 자동화, 중환자실 이송예측, 임상 워크플로 개선, 환자의 병원 감염 요소와 위험 요소 예측, 그리고 암과 뇌졸중 치료에 AI를 활발하게 적용하는 ‘초개인화 서비스’ 병원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은 AI를 사용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뇌 수만 건을 스캔해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90% 이상 정확하게 감지하는 모델을 개발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역시 단 한번의 CT(전산화단층촬영장치) 스캔 데이터를 사용해 수년 후의 폐암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딥러닝 모델(시빌·Sybil)을 개발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예일대 병원은 AI를 사용해 패혈증 환자 사망률을 29% 줄였고, 병원 재입원율을 14% 낮췄다고 한다.

과거에는 환자의 암이나 알츠하이머에 관한 증상은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처방했는지 등 모든 것을 의사들의 지식에 의존했다. 오늘날에는 AI의 딥러닝 알고리즘에 넣으면 된다. 질병, 처치, 코드, 약 처방 등 모든 의료 데이터들을 컴퓨터에 넣고 AI 알고리즘을 작동하면 AI가 알아서 자동으로 분류해 챗GPT로 검증하고 유추 가능한 모델링을 만들어낸다.

구글은 흉부 엑스레이 영상을 해석하고 의견서까지 작성하는 AI 시스템 ‘메드팜 멀티모달’을 내놓았고, MS는 수천만쌍의 이미지를 학습시켜 환자에 대한 의견을 챗GPT처럼 내놓을 수 있는 의료 AI 모델 ‘라바-메드’를 공개했다.

병원들은 이미 환자 치료에 인공지능(AI)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US뉴스&월드리포트 자료).

의사들은 공감·연민 부재 우려

제프리 힌튼 박사는 AI 학계의 거두로 컴퓨터과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을 수상했다. 그는 “의사의 의료행위를 보조하는 AI가 신속성과 정확성 등에서 때때로 의료인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며 ‘AI 의사 대체론’을 언급했다. 지난해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AI로 작동하는 로봇 수술로 의사의 손떨림으로 인한 조직 손상 등의 문제 없이 정밀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사례를 실었다.

그런데도 의사들이 의료에 AI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데 망설이는 이유는 책임성, 데이터 편향성, 공감과 연민 부재 등의 문제 때문이다. 챗GPT는 미국 의사면허시험(USMLE)에 평균점수 이상으로 합격했지만 할루시네이션(환각)을 일으켜 오답을 생성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물론 휴먼 피드백을 가미한 강화학습으로 AI를 보완한다. 하지만 오진율은 AI닥터보다 사람이 높다는 것이 중평이다. 실제로 하버드 메디칼센터, 구글 딥마인드 등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기관에서 유방암 등 특정 분야의 경우 AI의 오진율이 사람보다 훨씬 낮다는 자료를 내놓고 있다. 의료 AI 기업 루닛은 2021년 4월부터 2022년 6월 사이에 스웨덴 여성 5만5581명을 대상으로 유방암 검진을 한 결과 루닛 AI의 판독이 전문의 2명이 판독하는 경우보다 리콜률이 현저히 낮았다고 보고했다.

의사들은 AI 진료에서 공감과 연민 부재를 우려한다. 하지만 최근 옥스퍼드대는 “오늘날 의사들은 환자와 공감하고 헌신할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면서 “AI는 의사에게 시간을 만들어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오늘날 의료에 AI를 활용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고객 통찰’과 ‘초개인화’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환자로서도 AI 덕분에 리스크 평가, 선별 검사, 진단, 병기 분류, 치료법 선택, 모니터링 등이 모두 일괄 가능해졌다. 작년 가을 미국에서는 AI로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진단하는 초개인화 무인 진료실이 등장했다. 앞으로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미국 전역의 쇼핑몰, 체육관, 사무실 등 3000여 곳에 무인진료 정거장(헬스케어포드)을 설치할 계획이다. 무인 진료실에서는 의료진 없이도 고객 통찰이 가능하다. 고객들은 당뇨병, 고혈압, 우울증, 불안 등 여러 질병 영역에 대한 1차 진단을 받을 수 있다. 피부암 스캐너로 피부 변색과 같은 사항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혈액 검사는 바늘이 없는 일회용 수집 장치를 사용한다. 의사가 실시간으로 자료를 검토하고 추가 처방전이나 지침을 내주는 맞춤형 AI 처방전도 가능하다.

AI가 의사 업무 아웃소싱

이처럼 AI는 초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신속 정확하게 제공해주는 시공간의 선물이 될 수 있다. 무인진료실, 메디케어에 더해 의사와 협업 등으로 의료인력 부족 문제와 의사들의 업무 과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환경과 시스템이 가능해진다면 AI가 의사를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3분 진료는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의사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와서 또 복잡한 절차를 거쳐 병원에 가면 3분간 대화하고 돌아서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 아니라 환자에게 허탈감을 준다.

인류의 건강을 위한 거대한 혁신이 시작되었다. AI가 의사들의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동안에 의사는 과학 발전과 창조적인 일에 시간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AI 덕분에 의사들이 환자에 대한 책임감을 키울 수 있기에 ‘AI판 히포크라테스’라고 칭송받을 것 같다. 의사들은 “AI는 공감 능력과 연민의 감정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환자를 두고 병원을 이탈하거나 파업하는 일도 없다. AI는 쉬거나 잠자지 않고 24시간 내내 일해도 절대 지치지 않는다.

AI에는 없는 공감과 연민의 시간을 AI 덕분에 의사들이 가질 수 있다면 역설적으로 AI로 인해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실천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