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쪽지] 결혼 유지하는 부모님 존경할 이유

[철학 쪽지] 결혼 유지하는 부모님 존경할 이유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입력 2024-03-09 04:02

대학 신입생 가운데 얼굴이 어두운 학생 중에는 부모님이 이른바 수능 이혼을 하신 경우가 제법 있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비판적 사고를 강의하다가 일부러 결혼을 사례로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결혼이 힘든 이유는 합의할 일이 많다 보니 불일치를 확인할 기회까지 많아지기 때문이다. 합의할 일이 100가지, 1000가지이면 그중 10%만 합의를 못해도 싸워야 할 일은 10가지 100가지이다. ‘여러분이 연애하면서 내일 만날까 말까, 뭘 할까 가지고도 그렇게 싸우는데 여러분의 부모님은 할머니 할아버지 봉양문제 병원문제 여러분 학원문제 등등 합의해야 할 일이 그렇게 많으니 불일치를 확인할 기회가 많아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그러면 학생들은 ‘정말 그렇다’는 얼굴을 하고 듣는다.

또 다른 이유는 그 합의 안 되는 일들이 생활과 직접 연관되는 것이어서 양보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어쩌다 만난 친구끼리 고기를 먹느냐 회를 먹느냐를 결정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한번 양보하면 앞으로 계속 그 결정에 맞추어 일이 돌아갈 것이니 양보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서로의 일치하는 면을 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차이에 주목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애 시절에는 통하는 면이 신기해서 통하는 면에 집중하고 감동한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면 통하지 않는 면에 집중하게 된다. 통하는 부분은 당연하게 여겨 의식하지 않게 되는데 통하지 않는 면은 나에게 불편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인문학 강의에서 모두를 웃게 하는 유머 중 하나가 다음이다. “결혼 생활 몇 년이세요? 25년이요? 그럼 이혼유보 25년째이시네요!” 이 말에는 모두들 터진다. 서로의 웃음을 통해 모두 자신만 이혼을 유보하고 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상대로 인하여 내가 편리한 것은 의식하지 못한 채 상대로 인하여 내가 힘든 것에만 주목하기 쉬운 것이 인간의 경향성이니 이런 밀도 높은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부지간은 상대방의 무의식과 나의 무의식을 봐가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만 유지될 수 있는 관계다. 남녀지간은 묘하게도 나에게 부족한 면을 가진 사람, 내지는 나의 정신을 성장시킬 특성을 가진 사람에게 이끌리게 된다. 그리하여 결혼은 서로가 서로의 무의식을 뒤집어엎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만나게 하는 경험이 된다.

나와는 다른 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나와 다른 그 사람과 살아내기는 어렵다. 매력을 느끼게 하는 원리가 그렇다 보니 거의 모든 결혼 관계는 자신의 우물이 깨지고 확장되는 고통을 겪지 않고는 유지되지 않는다. ‘이러다가 내가 죽지’ 할 정도로 우물이 깨지고 확장되는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결혼만큼 서로의 존재가 삼투압을 일으켜야 하는 관계는 없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말하곤 했다. 이혼은 아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니 이혼한 부모님을 원망하지 말고 결혼을 유지하고 계신 부모님을 존경하라고 말이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