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인공지능이 던진 질문

[여의춘추] 인공지능이 던진 질문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입력 2024-03-15 04:02

옐로 저널리즘이 판치는
한국 디지털 생태계에 글과
그림까지 만드는 AI 덮쳤다

AI가 만든 ‘뜯긴 투표함’ 사진
순식간에 혼란 만들 수 있다

무엇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묻는 철학과 윤리가
AI 시대에 더 중요해졌다

20년 전 국민일보는 새로운 뉴스를 시도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취재 영역으로 삼았고 보도자료와 브리핑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온라인 속보로 뉴스의 시차를 없앴다. 요체는 정보의 민주화였다. 정부나 대기업, 유명인의 일만 기사가 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도 얼마든지 뉴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종이신문 배달이나 9시 뉴스를 기다리지 않아도 누구나 실시간으로 정보를 접하는 경험.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런 온라인 뉴스에 이름을 붙였다. 국민일보 인터넷 뉴스를 줄여 쿠키뉴스라고.

쿠키뉴스는 실시간 온라인 방송도 시작했다. 2008년 평양에서 열린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아리랑 연주 장면을 중계했고, 김연아 선수가 유럽의 빙상대회를 앞두고 빙판을 고르는 영상을 전화선으로 밤새 전달받아 온라인에 띄웠다.영화 ‘디 워’를 두고 평론가와 누리꾼이 실시간 토론을 벌였다. 다른 신문사들이 국민일보를 찾아와 견학했다. 정보의 민주화, 민주적인 공론장 구현이라는 현대 저널리즘의 이상이 온라인 뉴스를 통해 실현되는 듯 보였다.

이내 여러 매체가 온라인 속보와 온라인 취재에 뛰어들었다. 새롭게 열렸던 공론장은 금세 퇴행했다. 수십 개 매체가 똑같은 속보를 앞다퉈 쏟아냈다. 커뮤니티나 SNS에 올라온 얘기를 아무 검증 없이 옮겨썼다. 기사 조회수에 따라 광고 수입이 들어오니 벌어진 행태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온라인 기사를 쓸 때는 신문 지면에 올라갈 기사보다 좀 더 가볍고 허술하게 썼다.

그 결과가 공멸이었으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폐허에서라도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을 테니. 온라인 옐로 저널리즘은 조회수에 따라오는 광고비로 연명하며 좀비같이 살아 남았다. 여기에다 기성 매체의 대체재로 등장한 이른바 논객들은 언론을 조롱하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팬덤과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저널리즘은 위기에 처했다.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사건의 맥락을 전달하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한데, 잘 보지도 않는다. 불편한 진실보다는 나중에 거짓이 되더라도 당장 속 시원한 사이다 같은 이야기가 쉽게 돈을 벌어준다. 나쁜 뉴스가 좋은 뉴스를 쫓아내는, 언론판 그리셤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잠깐 열린 듯했던 자유와 평등의 공론장은 순식간에 오염되고 무너졌다.

나와 같은 기성 언론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 사실을 엄정하게 취재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하며 공정하게 논평한다는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을 소홀히 여겼다. 저널리즘이라는 직종은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철학과 윤리를 곧추세우기는커녕 세태를 좇아 조회수를 올리는 일에 바빴다. 허술한 윤리의식이 사태를 여기까지 몰고 왔다.

인공지능(AI)이 글과 그림에다 동영상까지 만드는 시대가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얀색 발렌시아가 롱패딩을 입은 사진은 나도 깜빡 속았다. 그게 AI가 그린 그림이라는 말을 누가 해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진짜인 줄로만 알았을 터다. 지난해 3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수갑을 찬 모습으로 경찰에 체포된 장면이 온라인에 유포됐다. 그 역시 AI가 만든 가짜 사진이었다.

총선을 한 달 앞둔 한국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이번 선거는 여야 간 우열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하고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상대를 향한 불신이 크다. 결과가 맘에 안 든다면 가짜뉴스를 만들어서라도 판을 뒤집으려는 유혹에 빠지는 사람이 수천만 명 중에 한두 명이라도 있을지 모른다. 투표용지가 구겨져 버려진 사진, 투표함이 뜯긴 사진은 만들기도 쉽다. 언론이 제대로 확인하기 전에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브 등을 통해 거짓이 유포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뒤늦게 가짜 사진으로 밝혀지더라도 오히려 진실이 더 의심받을 수 있다. 철학과 윤리가 부재한, 혹은 잘못된 철학과 이해득실에 매몰된 사회에는 생성형 AI가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

철학이라니. 윤리라니. 얼마나 하품 나오는 소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과 윤리가 더더욱 중요해졌다. AI 기계가 기술과 생산을 대신 해줄수록 더 그렇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사는 게 바람직한가. AI 시대에 앞서가려면 이 질문에 먼저 답을 해야 한다.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