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존 케이지와 글렌 굴드

[살며 사랑하며] 존 케이지와 글렌 굴드

김선오 시인

입력 2024-03-25 04:06

클래식 음악은 연주의 예민함 때문에 음반 녹음 과정에서 연주자의 자연스러운 허밍이나 기타 작은 소음들을 제거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음을 제거하면 녹음된 연주 역시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클래식 음반에서 종종 연주자의 신체가 발생시키는 작은 소음들을 듣게 된다. 글렌 굴드의 앨범은 특히 그 정도가 심한데, 처음 굴드의 바흐 연주 음반을 들었을 때는 그의 허밍이 너무나도 거슬려 음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지 애매하게 연주를 방해하는 사람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존 케이지의 ‘4분33초’는 4분33초간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음악으로 유명한데 사실 이 작품은 3악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음표나 쉼표 없이 TACET(연주하지 말고 쉬어라)이라는 악상만이 각 악장의 악보마다 적혀 있다. 그러나 연주 길이에 대한 지시는 따로 없다. 초연에서는 시간을 무작위로 결정하여 1악장을 33초, 2악장을 2분40초, 3악장을 1분20초간 연주했다. 그 시간 동안 피아노 뚜껑이 여닫히는 소리, 관객의 기침 소리, 온갖 인기척 등은 음악 일부가 되었다. 흔히 4분33초를 침묵의 음악이라 부르지만 사실 이 작품에 진정한 침묵은 없는 셈이다. “텅 빈 시간이나 텅 빈 공간 따위는 없다”고 존 케이지가 말하는 것처럼, 오히려 4분33초 작품의 핵심은 ‘침묵 없음’이다.

우리의 사고는 많은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도록 설계됐다. 음악과 소음, 좋은 것과 나쁜 것, 내 편과 적. 존 케이지의 글을 읽고 나서는 글렌 굴드의 허밍이 더 이상 군더더기로 들리지 않게 되었다. 무균실인 장소는 없으며, 군더더기 역시 세계의 일부다. 굴드의 음악에서도 연주와 허밍 사이의 특권적 경계가 무너지자 그 시간 전체가 음악이 되었다. 분류하고 판단하려는 습관에서 벗어날 때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은 더 자유롭고 편안해진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