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의대 정원, 소모적 논쟁을 넘어

[청사초롱] 의대 정원, 소모적 논쟁을 넘어

고경남(서울아산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

입력 2024-04-03 04:01

지난 주말 전공의 대신 병동 당직을 서며 밤을 꼬박 새웠다. 월요일 아침, 지친 몸으로 병동 회진을 마친 후 의료 공백 사태 해결책을 기대하면서 대통령 담화를 들었다. 보건의료가 안보, 치안만큼 중요하므로 재정 투입을 아끼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의정 갈등 해결을 위한 논의를 가로막는 숫자의 장벽이 치워지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 그래도 열린 마음으로 논의하겠다는 언급에 희망을 걸고 싶다.

정부는 2000명이 과학적,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정부가 다양한 방안을 검토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미래 수요 예측은 넓은 오차 범위를 갖는 통계적 추론의 영역이지 하나의 정답을 구하는 방정식이 아니다. 의료 수요 예측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고 증원의 규모나 속도에도 여러 가능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재의 의대 교육과 병원 수련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이처럼 급진적인 증원 규모를 유일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2000명은 현재 의대 정원의 65%에 해당하는 파격적인 수치다. 더욱이 추가 정원이 모두 지방에 배정됐기 때문에 실제 각 대학의 증원 규모는 파격 그 이상이다. 충북대는 무려 4배, 다른 지방 대학도 대부분 2~3배 증원됐다. 이렇다 보니 충청·대전 지역의 의대 정원이 서울 전체 의대 정원을 넘어서는 기형적인 상황이 됐다. 당장 초중고나 대학의 어떤 학과도 1년 만에 정원을 4배로 늘려서 정상적인 교육이 가능할지를 생각해 보자.

다양한 실험과 도제식 임상 실습이 중요한 의대 교육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거점국립대 의대 정원을 200명으로 통일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원이 49명인 충북대는 151명이 늘어서 200명이 되고 부산대는 125명에서 75명 늘어 200명, 전북대는 142명에서 58명 늘어 200명이 되는 식이다. 각 대학의 기존 규모, 지역 인구, 부속병원 규모가 다 다른데 정원을 모두 200명으로 맞춘 것을 과학적,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충북대 정원이 4배나 늘어서 200명이 된 이유를 물었더니 보건복지부는 전북대가 200명이니 충북대도 200명이 돼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정원 배정 과정에서 합리적인 검토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국민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정부의 대치는 답답하기만 하다. 관료들은 의대 정원 문제를 두고 흥정하듯 굴복하지 않겠다고 한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전문가들과 협의하는 것을 흥정이나 굴복이라고 폄훼한다면 정책 추진 과정에서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의협도 낙선운동 같은 정치적 대응보다는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일부 의사들의 독설은 정부와 의료계 사이의 감정의 골을 깊게 하고 있다.

의료계가 갑작스러운 대규모 증원에 반대하는 것을 ‘무조건적인 증원 반대’나 ‘의료 개혁 반대’로 치부하는 상황도 안타깝다. 실제로 불합리한 의료 환경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누구보다 의료 개혁을 원한다. 정부에서도 의료계를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동반자로 인식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공의 수련 중단과 의대 학사일정 파행으로 1년 동안 전문의 및 신규 의사 배출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대한민국 의료 역사에 없던 초유의 사태다.

대학병원 진료 기능이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고 경영 상황은 파탄 직전이다. 이대로 가면 전공의들이 돌아올 병원 자체가 사라질 상황이다. 의료 개혁을 논하기 전에 의료 붕괴가 더 가까워 보인다. 시간이 정말 촉박하다. 정부와 의료계는 국민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공통된 목표하에 절박한 마음으로 대타협의 장으로 나오기 바란다.

고경남(서울아산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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