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소방관이 존경받는 나라

[한승주 칼럼] 소방관이 존경받는 나라

한승주 논설위원

입력 2024-04-03 04:20

사회적 지위 높은 직업 1위
한국 국회의원, 미국 소방관

미국은 연봉 높고 최고 대우
시민 존경, 직업 만족도 높아

한국은 처우 개선됐지만 미흡
22대 국회, 관련 첫 법안 내길

30년간 미국 뉴욕에서 소방관으로 일하다 은퇴한 69세 밥 벡위드는 9·11 테러 가 일어나자 현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2001년 9월 14일, 그는 무너진 건물 한가운데 있는 소방차 위에서 잔해를 처리하고 있었다. 기자회견을 위해 현장 지휘본부로 가던 조지 W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은 그를 발견하고 동선을 변경해 소방차 위로 올라갔다. 낡은 소방 헬멧을 쓰고 인공호흡기를 목에 건 벡위드에게 대통령이 다가가 어깨를 감싼 모습은 미국이 소방관을 어떻게 예우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모습은 타임지 표지 사진에 실려 역사로 남았다. 벡위드는 은퇴 후에도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미국인의 상징으로 불렸다. 미국에서 소방관은 이런 직업이다.

최근 나라별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즉 위세 있는 직업을 조사했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한국은 가장 위세 있는 직업으로 국회의원을 꼽은 반면, 미국과 독일은 소방관이 1위였다. 한국에서 소방관은 15개 직업 중 11위에 그쳤다. 소방관은 거의 유일하게 목숨을 걸고 일하는 직업이다. 모두가 도망쳐 나올 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다. 다른 이를 살리려다 자기가 희생되기도 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숭고한 일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소방관의 역할은 같은데 사회적 지위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미국은 소방관을 안전의 총책임자로 여기고 존경심을 담아 최고의 대우를 한다. 주마다 다르긴 하지만 급여 1억원과 위험수당 2억원을 포함해 평균 연봉 3억원을 받는다. 이는 미국 전체 근로자 연봉의 2배 정도인 고액이다. 사고 현장에서 다치면 소방전문병원으로 이송돼 전액 무료로 치료를 받는다. 근무 시간에 사망하는 경우는 화재 진압 사고뿐 아니라 자동차 사고·심장마비 등 상황과 상관없이 순직 처리된다.

한국은 소방 장갑과 작업복도 제대로 지급 안 되던 열악한 근무 환경이 알려지면서 몇 년 사이 처우가 많이 개선됐다. 2014년 4만여명이던 소방관은 지난해 6만592명으로 늘었다. 위험수당 포함 평균 연봉이 6000만~7000만원으로 근로소득자 평균(4214만원)보다 높다. 다만 주당 70시간 정도를 일하는 것을 감안하면 많은 편은 아니다. 한 해 평균 5명이 순직하고 400명이 부상당한다. 최근 10년간 소방관 1만명당 사망자 수는 1.7명으로 미국(1.01명) 일본(0.7명)에 크게 앞선다. 평균 사망연령은 70.6세로 한국인 평균수명(82.7세)에 비해 낮다. 소방전문병원이 아직 없는 것도 아쉽다.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소방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다. 미국은 누군가에게 봉사하는 직업을 동경하고, 만족도 역시 높다. 특히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자긍심이 커 소방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다. 그래서 미국 초등학생이 가장 되고 싶어 하는 직업 1위가 소방관이다. 동시에 본인이 가장 만족하는 직업 2위도 소방관이다. 미국에는 “사이렌이 울리면 소방관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이 있다. 대형 산불을 진압하다 소방관들이 순직하면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전역이 애도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다. 소방관의 비극적인 순직 사고가 있을 때마다 그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영웅으로 받들지만 금방 잊어버린다. 일은 위험한데 그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식에게 쉽게 권하지 못하는 직업이다. 119에 들어오는 긴급하지 않은 신고도 소방관을 힘 빠지게 한다. 문이 잠겼다, 강아지가 아프다, 심지어는 맨홀에 빠진 1만원을 주워 달라는 신고도 있다. 이는 정작 중요한 업무를 방해하고, 직업에 대한 자괴감도 들게 한다. 여러 이유로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는 소방관은 10명 중 3명뿐이고, 열에 아홉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소방관의 자긍심은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일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이들이 이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 나라가 진정 선진국일 것이다. 소방관의 위험수당을 올리고, 소방전문병원을 설립하고, 무엇보다 이들을 보는 우리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일주일 후면 국회의원 선거다. 새로 구성될 22대 국회는 첫 법안으로 소방관의 처우 개선을 담은 내용을 발의하면 어떨까. 우리도 소방관이 존경받는 나라가 되어 초등학생 장래 희망에 헬멧 쓰고 사람을 살리는 영웅의 모습이 담기길 바란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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