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포기하라, 그럼 길이 열릴 것이니

[너섬情談] 포기하라, 그럼 길이 열릴 것이니

임홍택 명지대 겸임교수·작가

입력 2024-04-03 04:02

저출산 문제, 파격적 지원만
외치지 말고 단기간에는
개선 불가능함을 인정해야

수년 전 정부가 주최한 ‘저출산 포럼’에 토론자로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했던 유일한 조언은 “포기하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학계와 정부, 기업이 모두 함께 노력을 짜내는 일은 가상하나 그 노력으로 몇 년 안에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라는 뜻이었다. 물론 이 호기로운 발언 덕에 두 번 다시 저출산 관련 포럼에 초청받는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22대 총선이 다가오자 여야는 또다시 날카로운 무기 없이 저출산 전쟁에 참전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회심의 술책처럼 꺼내놓은 공약들은 기존의 허울 좋은 ‘특단의 대책’의 재탕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말이 정부와 정치권에서 내놓은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 ‘지금의 초저출산 문제’는 애초에 정부 정책으로 좌지우지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마이크 저지가 연출한 미국 영화 ‘이디오크러시’는 멍청한 인류들이 지배하고 있는 2505년 지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가상의 미래에 인류가 지능이 낮은 인간들로 가득 차게 된 이유는 IQ가 높은 부류의 부부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아이를 갖지 않다가 나이가 들어 출산의 기회를 놓치게 되고 결국 대가 끊겨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B급 공상과학소설(SF)을 가장한 정치·사회풍자 영화가 현실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지만,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출산 현실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많은 이들이 현실적인 조건을 찾아 결혼과 출산을 늦추고 나중에 정작 아이를 낳고 싶을 때 난임의 현실을 마주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결혼조차 합리적이지 않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구성의 오류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이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자 생각하는 합리적인 행동을 취했을 때 사회 전체로는 비합리적 결과가 초래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결국 우리나라 저출산의 근본적인 문제는 미약한 정부의 출산지원책 때문이 아니라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표현처럼 ‘예전보다 지나치게 현명해지고, 똑똑해진, 계산할 줄 아는 세대의 불행’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세대의 선택을 지극히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비난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누군가는 이러한 선택을 휴머니즘의 실현으로 여긴다. 중국어 격언 중에서 남살무고(濫殺无辜)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무고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인다’라는 뜻으로 전쟁과 살육이 이어졌던 중국의 역사에서 최소한 죄가 없는 이들은 죽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던 격언이다.

그런데 최근 남생무고(濫生无辜)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는 새로운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봤자 가난하고 불행해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애를 태어나게 하는 것도 일종의 죄라는 의미로 통한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지금의 불행과 빈곤을 그대로 물려줄 바에야 차라리 출산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친절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 사회는 좀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예산의 한계로 찔끔찔끔 하나씩 얹어주는 출산지원책을 계속할 것이 뻔한 마당에 ‘파격적 지원’이라는 공염불만 외치지 말고 깔끔하게 이 문제가 단기간에 나아질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애당초 이 문제는 정부 차원의 정책으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이다.

개인 간 과도한 경쟁과 수도권 집중 현상의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지위의식 때문이다. 최소 50년에 걸쳐 만들어진다는 문화의 부작용을 해소하려면 최소한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렇게 긴 호흡으로 이 문제를 대해야 한다. 상급지·하급지 따위를 생각하지 않으며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 그리고 당장 아이를 적게 낳더라도 현재의 삶을 포기하는 이를 돌볼 수 있는 나라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임홍택 명지대 겸임교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