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협력 제안한 日연구 리더십, 혁신 기술 상용화 앞당긴다

글로벌 협력 제안한 日연구 리더십, 혁신 기술 상용화 앞당긴다

[글로벌 R&D 현장을 가다]

입력 2024-04-03 04:05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27일 찾은 일본 도쿄 고토구의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 워터프론트 센터 2층에는 AIST가 연구·개발(R&D)을 통해 만든 새로운 기술이 전시돼 있었다. 전시장에선 손바닥 열만으로 모터를 작동할 수 있는 기술 체험이 가능했다. 체온을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고, 이를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친환경 에너지 기술이었다. 기존 태양광 패널 두께와 무게의 10분의 1 수준인데도 에너지 효율을 유지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 기술도 전시돼 있었다. AIST는 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이는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등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었다.

일본 정부 지원에 성장한 AIST

AIST는 2002년 설립된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최대 공공연구기관이다. 에너지와 환경, 생명공학 등 7개 영역의 연구 다양성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에너지와 환경오염, 저출산, 인구 고령화 등을 해결하고 일본이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연구 혁신을 목표로 한다. ‘기술을 사회로’라는 연구 철학을 강조하고 있다.

AIST는 특히 글로벌 기후변화 연구 분야에서의 리더십을 구축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RD20’(G20 국가 청정에너지 연구기관장 국제회의)이라는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설립했다. RD20은 탄소 중립 사회를 달성하기 위한 청정에너지 기술을 연구하고, 글로벌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가속화하는 것이 목표인 국제회의체다.


RD20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글로벌 협력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했다. 탄소 중립 사회를 달성하는 것이 일본의 중요한 과제인 데다 글로벌 연구기관이 합심해 청정에너지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또 일본 정부는 자국 연구기관이 이들 분야에서 리더십을 펼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이에 일본 정부는 AIST를 앞세워 국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나섰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19년 1월 일본에서 열린 다보스 회의에서 G20 국가들이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독려했다. 기후변화를 일으킨 선진국들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고, 구체적인 해결책 논의를 위한 협의체를 만들자고 강조한 것이다. 그 결과 유럽연합(EU)과 미국, 영국, 중국, 한국 등 20개국에서 24개 기관이 RD20에 참여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RD20에 참여했다.

RD20 연구를 이끄는 히로아키 하토리 AIST 박사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방향성을 제시하면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특히 전 세계적인 협력이 필요한 탄소 중립 관련 연구는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더 중요하다. 다른 국가의 기관과 협력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RD20 사무총장인 노리코 요시자와 박사도 “환경과 성장의 선순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선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성과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협력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만들어내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AIST는 RD20의 사무국 역할을 맡았다. G20 국가의 연구기관들이 기술개발 협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각종 행사를 연다. 2019년 일본 도쿄에서 첫 번째 글로벌 회의를 시작했고, 지난해까지 다섯 차례 일본에서 국제회의를 진행했다. 올해는 회의 무대를 처음으로 해외로 옮길 예정이다. 올해 7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국제회의를 열고 기후변화를 극복할 기술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촉구한다는 계획이다. 하토리 박사는 “G20 국가의 연구기관들이 RD20을 통해 탄소 중립을 실현할 실질적인 기술을 깊이 있게 협의하고 있다”며 “이는 정책을 주로 논의하는 다른 글로벌 협의체와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 최첨단 기술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주요 R&D 기관들이 회원국 간 연구공동체를 구축하고, 공동 R&D 활동을 하면 기후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혁신적인 성과를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R&D 핵심은 개방성

일본 도쿄 고토구에 있는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 아래 사진은 금속판이 손바닥 체온을 감지해 모터를 작동하도록 개발된 기술이 AIST 2층 전시관에 소개된 모습.

AIST는 기후변화 관련 연구성과를 각 연구기관이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 플랫폼은 호주의 국립 과학기관인 연방과학산업기관(CSIRO)이 운영하는 ‘수소지식센터’를 참고해 만들 방침이다.

수소지식센터는 수소 관련 정책과 연구 정보를 온라인에 제공해 호주의 수소 연구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목표를 세웠다. 글로벌 R&D 사업의 핵심은 참여국과 기관이 연구 데이터와 성과를 공유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요시자와 박사는 “RD20에 참여한 특정 국가의 연구기관에 개별적으로 문의하지 않더라도 쉽게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도 각 연구기관이 R&D에 집중하고 글로벌 협력도 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조성하는 데 나섰다. 일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EU 최대 연구혁신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에 준회원국으로 지난달 25일 가입했다. 호라이즌 유럽은 EU가 1984년부터 시작한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혁신 재정지원 사업이다. 글로벌 문제 해결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EU와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는 판을 정부가 깐 것이다. 다자간 연구 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할 경우 RD20과 같은 연구 리더십도 펼칠 수 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전 세계의 기술혁신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개방형 혁신 체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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