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여당은 한동훈만 고군분투 중

[여의춘추] 여당은 한동훈만 고군분투 중

손병호 논설위원

입력 2024-04-05 04:09

야당은 원로들까지 총출동해
선거 지원 유세 나서고 있지만
여당은 韓 위원장 이외에는
발벗고 뛰는 인사들 안 보여

친윤석열계 말고는 당내 다른
세력과 중간리더 안 키운 탓
패배 위기인데, '불이야'라고
소리치는 사람 없는 게 더 문제

지난주에 서울에 올라온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을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4·10 총선 전남 해남·완도·진도의 더불어민주당 후보다. 그런데 박 후보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측근으로부터 수도권을 비롯한 주요 총선 격전지의 지지율 조사 결과를 보고받았다. 보고를 듣다가 민주당 후보가 뒤지다가 따라붙은 지역이 있으면 좋아서 “그렇지” 하고 추임새를 넣었고, 상황이 안 좋은 지역은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박 후보가 판세 보고를 받은 건 본인이 어디로 지원 유세를 가면 좋을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본인도 후보로 뛰고 있지만, 당 전체 선거가 걱정돼 격전지 지지율을 챙긴 것이다. 지금 민주당 후보들이 자기 지역구 유세에 가장 ‘모시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박 후보다. 실제 그와 측근의 휴대폰은 유세 지원을 부탁하는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박 후보를 만나고 나오는 길에 ‘그런데 국민의힘에선 누가 이런 역할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전략을 담당하는 당 조직 또는 선거 상황실 단위에선 판세를 챙기겠지만 당의 전체 선거가 걱정돼 자신이 직접 동분서주하며 곳곳으로 지원 유세를 다니는 정치인은 찾기 어렵다.

예전 같았으면 김무성 전 대표나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같은 이들이 도우미 역할을 했겠으나 지금은 셋 다 그럴 형편이 안 된다. 유승민 전 의원이 그나마 몇 군데 다니고 있지만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어떤 공식 직함도 받지 못해 존재감은 미미하다. 인지도가 있는 안철수, 나경원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간간이 회의 때 ‘말’로 애쓰고 있으나 둘 다 지금 자기 선거 치르기도 버거운 상태다. 그럼 권성동, 이철규 의원 등 주류인 친윤석열계 고참 정치인들이 그런 역할을 해야겠지만 막상 선거가 시작되자 그들도 안 보인다. 그렇다고 당의 원로격 인사들이 뛰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에선 이해찬, 김부겸 상임고문 같은 이들까지 총출동해서 선거를 돕고 있지만 여당에선 그런 원로들이 안 보인다. 이해찬 김부겸 박지원은 다들 와 달라고 러브콜이 쇄도하지만, 여당에선 득표에 도움이 될 만한 원로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국민의힘에서 그야말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고군분투밖에 안 보인다. 안쓰러울 정도로 혼자만 선거를 하고 있다. 여당이 이번 총선에서 전반적으로 열세인 건 정권심판론이 거센 이유도 있지만 사실상 한 위원장 혼자 선거를 치르고 있는 탓도 크다고 본다. 그건 윤석열 대통령과 친윤계가 그런 당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선거에 도움이 될 만한 이들은 죄다 존재감을 없애버렸고, 그렇다고 새로운 치어리더들을 키우지도 않았다. 한 위원장이 처음에는 구세주처럼 등장했지만, 친윤계에 의해 그의 위상마저도 심각히 훼손됐다. 그런 상태의 한 위원장이, 그것도 혼자서 선거를 치르고 있으니 선거가 제대로 되겠는가.

정당이란 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당권 경쟁도 하고 때론 정강·정책을 놓고 노선 투쟁도 벌여야 하는 조직이다. 그렇게 한바탕 싸우다 보면 어느새 다 같이 체급이 높아져 있다. 그렇게 체급 높은 사람들이 많아야 당이 주목받고, 정치적 스피커도 다른 당에 비해 더 커지게 되고, 총선이나 대선 같은 큰 전쟁이 있을 때 서로 힘을 합치면 세(勢)도 배가된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은 친윤 말고는 그런 세력도 없고, 차기 리더가 될 만한 중간보스들도 별로 안 보인다. 비중 있는 정치인이 될 싹을 다 자른 탓이다. 그런데 그나마 남은 친윤도 중요한 선거 때 존재감이 없다.

집권한 지 2년도 안 된 여당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총선을 치른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내내 열세인 채로 선거가 끝난다면 한 위원장 아닌 여당의 다른 정치인들은 입지가 커질까. 그렇지 않으리라 본다. 한 위원장의 실패가 아닌, 아무도 안 도와준 여당 전체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이긴 전쟁이 아닌 진 전쟁에서 챙길 전리품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서 뭘 챙기면 오히려 욕먹기 일쑤다. 여당이 만약에 이번 총선에서 열세를 끝내 뒤집지 못한다면 이는 민주당에 진 게 아니라 자책골과 무기력으로 진 것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선거하는 모습을 보면 한 위원장 말고는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나 위기감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불이야”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없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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