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권오식 (7) 믿음 강한 아내와 6개월 만에 결혼… 신앙인으로 첫발

[역경의 열매] 권오식 (7) 믿음 강한 아내와 6개월 만에 결혼… 신앙인으로 첫발

미팅으로 첫 만남부터 서로 호감
아내의 결혼 첫째 조건 ‘교회 출석’
교회에 교인 등록하고 세례도 받아
신혼 초 쿠웨이트 발령에 이직 결심

입력 2024-04-0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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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식 보국에너텍 부회장이 1987년 아내와 이화여대 대학교회 앞에서 기념 촬영한 모습. 두 사람은 결혼 전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곤 했다.

아내를 만난 것은 사우디에서 복귀하고 한 달 만에 한 3대 3 미팅에서였다. 나는 들러리로 나갔다. 여자 소지품으로 상대를 결정하기로 했기에 친구 둘이 먼저 고르고 남은 화장품 샘플을 내가 갖게 됐다. 지금 아내 것이었다. 파트너가 되고 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성격이 발랄하고 대화가 잘 통했다. 왠지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듯했다. 아내도 내가 싫지는 않았는지 첫 만남부터 잘 대해줬다. 무엇보다도 중동 생활 등 회사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애프터를 신청하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당시 회사는 토요일까지 일했기에 일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아내는 이화여대 앞 빵집에서 보자고 했다. 만나서는 자기가 다니는 이대 대학교회에 가서 예배보고 점심 먹자고 했다. 나는 사우디에서 사막 교회까지 가 보았으니 별문제가 없었다. 물론 교회 가는 것보다 아내를 만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렇게 교회 데이트가 시작됐다. 나는 ‘교회를 다녀야 한다’는 아내의 결혼 조건을 받아들여 6개월 만에 결혼했다. 교회에 교인 등록을 하고 세례도 받았다.

아내는 대학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도 믿음이 강했다. 세례받던 날 아내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어? 죽으면 천국 가는 것 믿지?” 나는 “물론이지” 하고 답했다. 하지만 확신은 없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우리를 죄에서 사해 주셨어.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거야”라는 아내 설명에 나는 속으로 ‘그래 믿어야지. 그래야 아내와 함께할 수 있지’라며 중얼거렸다. 당시 나는 일요일에만 교회에 가고 성경은 읽지도 않는 무늬만 크리스천이었다.

아내와 내가 파트너가 된 것은 내 의지가 아닌 우연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도 대타로 미팅에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 생활을 하면서 우리 만남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알았다. 결혼한 지 한 달 무렵 나는 쿠웨이트 송전선 현장 부임 지시를 받았다. 6개월만 더 있다 나가겠다고 버텼지만 회사는 3개월 내 가라고 했다. 시부모, 시누이와 함께 사는 새색시만 놔두고 혼자 떠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고민 끝에 이직을 결심하고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등 세 군데에 면접을 봤다. 다행히 현대건설 4년 대리 경력이 인정돼 모두 합격했다. 한 대기업의 총무과장 자리에 가려고 사직서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사장의 비서실장이 잠깐 보자고 불렀다. 허철 당시 비서실장은 5년간 비서실 업무를 마치고 현업에 복귀하면서 나를 후임 비서로 염두에 뒀다며 내 의사를 물어보셨다.

나는 ‘비서가 되면 해외에 안 나가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곧장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결론적으로 이 사장이 회장으로 승진해 허 비서실장이 비서실 근무를 더 하긴 했지만, 나는 새로 온 정훈목 당시 사장의 비서가 됐다. 그렇게 4년 6개월간 비서로 일하며 해외에 안 나가도, 이직할 필요도 없게 됐다. 무엇보다도 아내와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정리=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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