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강하고 약한 사람

[살며 사랑하며] 강하고 약한 사람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입력 2024-04-10 04:03

“난 항상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으면서도 그럴 수만 있다면 좀 약해지고 싶었다.”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에 실린 문장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게 숨겨놓았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괜스레 창밖을 보며 커피 한 모금을 홀짝 마셨다. 솔직하고도 담담하게 적힌 한 줄 문장에 가슴이 뭉클했다.

험난한 세상 풍파 강직하게 헤쳐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가족, 이상과 소망, 단란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마음.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어리광 부리고 싶은, 누군가가 나를 돌봐주고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냥 기대 쉬고 싶은 여린 마음이 내겐 동시에 존재한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대다수가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이 모순되고도 복합적인 감정이 보편적인 경험이기도 하기에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일까.

약함이 약점이 되거나 치부가 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여린 마음을 숨긴다. 대신 강해지려 애쓰며 강해져야 한다는 압박을 견디며 살아간다. 종종 그런 모습을 목격할 때면 생면부지 낯선 이들에게서 애틋한 감정과 위태로운 불안의 감정을 느낀다. 내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따뜻한 말을 건네며 강한 척 굴기는 잘했어도 약한 마음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에는 미숙했다. 사람들 모두 어려운 상황을 겪을 때 도움을 받고 싶어 하며 기대고 싶어 하지만 단지 나처럼 그 마음을 드러낼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해지기도 약해지기도 하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로 했는데, 긴장 상태에 길든 경직된 마음을 풀고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기 위해서다. 서로에게 한없이 약해져도 되는 친구와 가족과 동료가 되기 위해서.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려고.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