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뽑는 문학상… 프랑스의 독서 실험

아이들이 뽑는 문학상… 프랑스의 독서 실험

[책과 길] 아이들은 어떻게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을까
쓰지 유미 지음, 김단비 옮김
유유, 272면, 1만7000원

입력 2024-04-11 19:48
‘고등학생이 뽑는 공쿠르상’을 공동 주최하는 프랑스 교육부와 프낙서점 관계자들이 매년 11월 초 공쿠르상이 발표되는 유명한 장소인 파리의 한 레스토랑 계단으로 학생 심사위원들을 초대해 소개하고 있다. 공쿠르 아카데미 페이스북 캡처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독서율, 책이 너무 안 팔린다는 출판계의 한숨, 아이들이 유튜브만 본다고 걱정하는 부모와 교사들…. 책과 독서의 세계는 무력감에 휩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은 어떻게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을까’는 프랑스에서 전개되는 아이들이 뽑는 문학상들을 소개하면서 독서계에 새로운 공기를 주입한다.

대표적인 게 ‘고등학생이 선정하는 공쿠르상’이다. 1903년 창설된 공쿠르상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학상이며 세계 3대 문학상에 꼽힌다. 1988년 시작된 ‘고등학생 공쿠르상’은 공쿠르상 1차 후보에 오른 소설 10여권을 고등학생들이 읽고 투표해 수상작을 선정한다. 이 상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수상작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고등학생 공쿠르상은 하나의 발랄한 이벤트가 아니다. ‘독서문화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책을 읽게 할 것인가?’ 등 오랫동안 거듭해서 질문해온 문제들을 풀 힌트가 그 속에 담겨 있다. 일본의 번역가이자 논픽션작가인 쓰지 유미는 이 상의 역사와 진행 방식, 참가 학생들의 반응 등을 상세하게 전한다.

고등학생 공쿠르상은 프랑스 교육부와 최대 서점인 프낙서점이 함께 진행한다. 매년 4월부터 고등학교의 참가 신청을 받아서 그중 57∼58개 학교에서 심사 학급 한 곳씩을 정한다. 9월에 공쿠르상 후보작이 발표되면 심사 학급에서는 ‘공쿠르 수업’이라고 불리는, 두 달에 걸친 독서와 토론이 시작된다. 공쿠르 심사에는 학급 전원이 참석하며, 심사 과정은 정규 국어 수업으로 진행해야 한다.

묵독, 낭독, 소그룹 토론, 서평 발표, 전원 토론, 저자와의 만남 등으로 구성되는 공쿠르 수업이 끝나면 학급 전원 투표로 후보작 중 세 편을 선정한다. 학급 대표 1인은 이 ‘학급 3편’을 들고 지역 심사위원회에 참석해 다시 3편을 고른다. 전국 6개 지역에서 선정된 ‘지역 3편’ 들을 놓고 지역 대표들이 최종 수상작을 결정한다. 결과 발표 모습은 TV로 전국에 생중계된다.

고등학생의 공쿠르상 심사는 대단히 어려운 도전이다. 두 달 만에 10여권의 소설을 읽어야 한다. 직업고등학교에서는 독서 습관이 전무하다시피 한 학생들도 많다. 게다가 출간된 지 얼마 안 된, 아직 평가되지 않은 작품들을 학생들이 평가해야 한다.

학생들이 이 ‘독서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까? “지난 20년간 고등학생 공쿠르상 참가 학급이 중도 포기한 사례는 단 1건밖에 없었다.” 상을 준다는 목적이 학생들을 진지하게 만들었다. “상을 준다는 것이 우리에게 책임감을 느끼게 했어요. 이렇게 열정적으로 토론을 한 건 정말 처음이었어요.” 학생들은 심사에 참여하면서 책을 읽게 되고, 토론하고 논평하는 방법을 익힌다. 저자와의 만남은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벤트다. 한 참가 학생은 “저도 문학을 읽을 수 있단 걸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프낙서점은 고등학생 공쿠르상 2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책과 인연이 없는 어려운 환경의 고등학생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 계층에 속한 젊은이 수천 명이 현대문학을 발견하고 애독하며 독서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라고 상의 의미를 요약했다.

책은 아이들이 심사위원인 또 다른 문학상인 ‘크로노스 문학상’과 ‘앵코륍티블상’도 소개한다. 크로노스 문학상에는 4만여명, 앵코륍티블상에는 15만여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매해 참가한다.


독서교육을 고민해온 프랑스의 사서와 교사들은 문학상 이벤트가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가르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동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문학상 수상작을 읽으라고 해왔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문학상을 뽑도록 했다. 이 발상의 전환이 새로운 독서 흐름을 만들어냈다.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심사위원이 되어 한 표를 던지는 거야.” 교사가 이렇게 얘기하는 순간, 아이들은 눈을 반짝거린다. 상을 준다는 목적을 공유함으로써 독서는 학급의 공통 관심사가 된다.

아이들이 뽑는 문학상에 프랑스 어른들이 보여주는 관심은 매우 인상적이다. 고등학교 공쿠르상 지역 심사위원회가 열릴 때는 공쿠르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이 찾아간다. 언론은 심사 과정을 보도하고, 지방 정부와 의회는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다. 후보에 오른 작가들도 학생들과의 만남에 적극적으로 응한다. 수상작 발표 현장에는 교육부 장관, 시장, 프낙서점 사장, 공쿠르 아카데미 회장 등이 참석하고 고등학생 심사위원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고등학생들의 독서 이벤트에 공쿠르상 명칭 사용을 허용한 공쿠르 아카데미의 결정도 놀랍다. 에드몽드 샤를 루 회장은 “젊은이들의 독서를 돕지 않으면 독서는 죽습니다”라고 말했다.

독서의 위축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은 독서문화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아이들과 젊은이들의 독서에 주목하면서 이들을 위한 즐거운 독서 공간을 창출하는 것으로부터 독서문화를 재구축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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