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의 이웃… ‘영등포의 슈바이처’ 선우경식의 삶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의 이웃… ‘영등포의 슈바이처’ 선우경식의 삶

[책과 길] 의사 선우경식
이충렬 지음
위즈덤하우스, 308쪽, 2만원

입력 2024-04-11 21:03

1982년 봄, 한 병원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가 피를 흘리며 업혀 들어왔다. 원무과에선 환자에게 “접수하지 않으면 진료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국민건강보험이 없던 때였다. 응급실에 있던 의사 선우경식이 달려와 “치료비는 내가 책임질테니 일단 응급처치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병원은 걸핏하면 무상 진료를 시도하는 선우경식을 부담스러워했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한 의술을 펼쳐 ‘영등포의 슈바이처’ ‘쪽방촌의 성자’로 불렸던 선우경식의 삶을 다룬 전기가 출간됐다. 한국의 대표적인 전기 작가 이충렬은 책의 서문에서 “의사 선우경식이 우리 사회에 남긴 선한 영향력이 더 넓게 파급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고 밝혔다.

1945년 평양에서 태어나 가톨릭의대를 졸업한 선우경식은 병원에서 일하며 돈 없는 환자들을 치료해주지 못하고 돌려보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목격한다. 그는 가난한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 거부가 없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킹스브룩 유대인 메디컬 센터에서 내과 전문의로 수련한다. 하지만 돈 잘 버는 의사로 사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귀국한다.

교수 생활을 하며 주말에 무료진료 봉사를 다니던 선우경식은 1987년 서울 관악구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 의료시설 요셉의원을 설립했다.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 중엔 노숙자, 행려자,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많았다. 선우경식은 병원 경영을 위해 후원회를 조직하고 자선음악회를 여는 등 여러 방안을 찾아 나갔다.

책에는 2003년 호암상을 받은 선우경식을 만나러 온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상무가 선우경식의 권유로 함께 영등포 쪽방촌을 둘러보고는 사비 1000만원을 건네고, 이후 매월 월급의 일정액을 기부하게 된 일화도 소개됐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며 오로지 환자들을 위해 투신했다. 위암 투병 중에도 마지막까지 환자를 진료하는 데 최선을 다하던 선우경식은 2008년 4월 뇌출혈로 쓰러져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책을 쓴 이충렬은 치밀한 자료 조사와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인물의 궤적과 시대정신을 담아낸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저서로 ‘간송 전형필’ ‘아, 김수환 추기경’ ‘천년의 화가 김홍도’ ‘아름다운 사람 권전생’ 등이 있다. 전기를 통해 한국 문화예술계 대표 인물의 생애를 발굴·복원한 공로로 제3회 혜곡 최순우상을 받았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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