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목적은 이익 극대화 아닌 공공선 추구”

“기업의 목적은 이익 극대화 아닌 공공선 추구”

[책과 길] 기업의 세계사
윌리엄 매그너슨 지음, 조용빈 옮김
한빛비즈, 400쪽, 2만2000원

입력 2024-04-11 21:02
‘기업의 세계사’는 고대 로마부터 21세기 실리콘밸리까지 포괄하며 인류사를 결정지은 8개의 기업을 다룬다. 포드 자동차, 동인도회사, 엑슨, 월스트리트의 ‘KKR’, 페이스북, 메디치 뱅크(사진 윗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등이 포함됐다. 게티이미지·뉴시스·기업 홈페이지

최초의 기업은 고대 로마의 ‘소치에타스’였다. 기원전 215년, 카르타고와 전쟁을 벌이던 로마는 국고가 바닥나 군대에 보급품을 지급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원로원은 로마 시민들에게 군대에 의복과 식량, 장비를 공급해주면 나중에 국가재정에 여유가 생겼을 때 보상해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총 19명으로 구성된 세 개의 회사(라틴어로 소치에타스)가 군을 돕겠다고 나섰다. 그들이 개입이 전쟁의 판세를 뒤집었다.

로마는 관료조직이 갖추어지기 전까지 민간기업을 이용해서 정부의 업무를 하도록 했다. 기업이 맡은 대표적인 정부 업무가 세금 징수였다. 신전 건축을 맡기도 했다. 당시 기업은 “정부와 합의하여 공공업무를 수행하는 민간인”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소치에타스가 점점 커지자 위험도 커졌다. 소치에타스는 속주의 시민들을 억압하고, 국정에 개입하고, 새로운 정복전쟁을 요구했다. 소치에타스가 로마 공화국의 멸망에 일조했다는 분석도 있다. 뒤를 이은 로마 제국은 일련의 세제개혁안을 도입해 소치에타스를 점차 관료로 대체해나갔다. 2세기가 되자 소치에타스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기업의 세계사’는 로마 소치에타스에서 시작해 르네상스 시대의 메디치 은행, 식민지 시대의 동인도회사, 독점의 시작이라고 할 유니언 퍼시픽 철도회사, 대량 생산 시대를 연 포드 자동차, 국가보다 거대해진 다국적 기업의 원조 엑슨, 제조업 시대를 금융자본주의로 재편한 월스트리트의 KKR, 21세기 정보·디지털 경제를 주도하는 페이스북까지 인류사를 결정지은 8개의 회사를 다룬다.

미국 텍사스 A&M대학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회사법을 가르치는 저자 윌리엄 매그너슨이 이 기업들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이유는 “기업의 목적은 이익 극대화”라는 현대 자본주의의 통념을 반박하기 위해서다. 그는 “기업을 역사적 현상으로 보면 존재 이유는 확실하다. 그것은 국가의 공공선을 추구하기 위함이다”라고 주장한다. 최초의 기업인 소치에타스가 등장한 이유가 그렇고,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동인도회사의 사업권을 승인한 이유도, 미국 링컨 대통령이 유니언 퍼시픽에 철도 독점권을 준 이유도 기업이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기업의 역사는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면 그 결과가 사회 전체에도 이익이 된다는 우리 시대의 믿음을 의심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기업의 이익 추구가 국가와 사회에 해를 끼쳤던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로마의 기업은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부추겼다. 석유기업 엑슨은 미국이 1·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지만, 대규모 환경파괴를 초래했으며 기후변화 관련 법안을 제지했다. KKR이 개척한 사모펀드 모델은 경영자들에게 천문학적 부를 안겨준 반면 노동자들을 대량해고로 몰아넣었다. 페이스북은 “사회의 이익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했으며 그 과정에서 광범위한 분야에서 민주주의에 해를 끼쳤다.”

기업의 번영은 그들을 다국적기업으로 변모시켰고, 국가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했다. 엑슨은 해외 독재자와 손잡고 사업을 했고, 환경파괴 문제를 유발했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을 제지하기는 어렵다. 규제를 강화하면 규제가 약한 지역으로 옮겨가니 할 수 없이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과 일자리를 보존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정부는 굴복하고, 피해는 대중에게 전가된다.

저자는 기업의 역사를 훑어보며 “기업과 공공선의 연결관계가 희미해졌다”는 진단을 내린다. “현재는 기업이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명제가 명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면서. 이 책은 기업이 경제 조직일 뿐 아니라 역사적 제도이고 정치적 산물이라는 걸 상기시키면서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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