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거리 쓰레기통 변천사

[한마당] 거리 쓰레기통 변천사

태원준 논설위원

입력 2024-04-13 04:10

2012년 서울 강남대로 양쪽 인도에서 정반대 풍경이 펼쳐졌다. 강남구 관할인 동쪽 인도에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쓰레기통이 서초구인 서쪽 인도는 하나도 없었다. 일회용 컵이나 전단지를 손에 든 행인들이 강남구 인도에선 눈에 띄는 쓰레기통에 버리면 됐는데, 서초구 인도에선 쓰레기통이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구석진 곳에 슬그머니 내려놓을까, 그냥 들고 갈까 잠시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두 구는 정반대 ‘쓰레기통 철학’을 갖고 있었다. 강남구는 거리에 쓰레기통이 있어야 길바닥에 버려지는 쓰레기가 줄어든다 생각했고, 서초구는 쓰레기통이 없어야 쓰레기 투기 자체가 줄어 거리가 더 깨끗해진다고 믿었다. 이에 강남구 거리 쓰레기통은 869개로 서울에서 가장 많았던 반면, 서초구는 0개였다. 동대문구 양천구 등이 강남구 노선을, 성동구 관악구 등은 서초구 노선을 택해 같은 서울에서도 동네에 따라 쓰레기 버리는 환경이 달랐다.

1990년대 초반 7600개였던 서울의 거리 쓰레기통은 2000년대 3200개까지 줄었다. 95년 쓰레기 종량제가 시행되면서 생활쓰레기 무단 투기를 막으려고 구마다 쓰레기통을 치우는 추세였다. 이후 불편하다는 민원에 조금씩 늘려 현재 5000개쯤 되는데, 아직 종량제 이전의 70% 수준이다. 최근 서울을 찾은 LA다저스 선수가 “왜 쓰레기통이 없냐”고 궁금해 하기도 했다.

강남대로에 정반대 정책이 적용된 이듬해 국민일보 르포에서 거리가 더 깨끗한 쪽은 강남구 인도였다. 길에 뒹구는 쓰레기가 서초구 인도의 절반이었다. 쓰레기 배출을 줄이자는 종량제 취지엔 서초구 방식이 더 부합하지만, 깨끗한 거리를 위해선 강남구 방식이 더 나았다. 서울시가 종량제 시행 30년 만에 거리 쓰레기통을 다시 늘리겠다고 나섰다. 귀여운 디자인의 새 쓰레기통 2000개를 내년까지 설치키로 했다. 시민의식이 높아져 무단 투기 우려가 줄었기 때문이라 한다. 시민의식이 더 높아지면 서초구 생각처럼 쓰레기 배출이 줄어서 쓰레기통을 다시 치우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