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미국이 편들어 준 일본의 꿈

[특파원 코너] 미국이 편들어 준 일본의 꿈

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24-04-17 04:07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함께 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의회 연설에서 던진 말이다. 그는 “거의 혼자서 국제 질서를 지켜온 국가로서 외로움과 피로감을 느끼는 미국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팝가수 마이클 잭슨 노래 가사를 연상시킨 이 두 문장에 일본의 전략적 사고가 요약돼 있다. 세계 민주주의를 수호해온 고독한 리더 미국이 일본을 활용하라는 제안이다.

일본은 미국의 글로벌 전략 파트너로 역할 하겠다고 약속하고, 그러려면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 꿈은 기시다 순방을 통해 거의 가까워졌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주요 7개국(G7) 구성원인 일본은 쿼드(미·일·호주·인도 안보협의체)와 오커스(미·영·호주 안보동맹), 한·미·일 3국 공조, 미·일·필리핀 3국 공조, 미·일·영 3국 공조,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추진 중인 소다자(mini-lateral) 협의체의 완전한 파트너가 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군사력 증강, 자위대의 역외 파견 확대, 살상무기 수출 등 보통 국가의 지위를 높여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기시다와 무기 공동 개발·생산에 합의하며 일본의 평화헌법을 무력화할 길을 터줬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과 그에 대한 미국의 위기감을 재빨리 캐치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2007년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국을 뺀 인도·태평양 전략을 설계했는데,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개념 발표로 결실을 봤다. 그 결과물이 쿼드다.

일본은 2021년 9월 오커스가 출범하자 이듬해부터 합류를 추진해 왔다고 한다. 기시다는 2022년 5월 오커스 멤버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전 총리와 회담을 갖고 양국 간 무기·탄약 반입 간소화, 차세대 전투기 개발 공동 협력 등을 담은 ‘원활화 협정(RAA)’을 맺었다. 사실상 군사동맹 수준의 합의다. 그리고 지난달 일본은 영국, 이탈리아와 함께 개발 중인 차세대 전투기의 제3국 수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존슨은 2022년 회담에서 일본의 오커스 참여가 긍정적이라고 말했고, 영국 하원 외교위는 지난해 11월 “일본이 첨단 군사기술 개발과 상호 운용성 향상에 협력하는 ‘필러2’ 프로젝트에 합류하면 더 큰 기술·안보적 이점이 있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며 적극적인 후원자가 됐다. 기시다 방미에 맞춰 발표된 오커스 발표는 이 보고서 내용 그대로였다.

일본은 중국 견제를 위한 필리핀의 지정학적 중요성도 주목했다. 2020년 9000만 달러 규모의 항공 감시 시스템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해 11월엔 ‘공적 안보 지원(OSA)’ 협약을 통해 400만 달러 규모의 해안 레이더 시스템을 제공했다. 필리핀은 일본의 첫 방위장비 수출 대상국이자 해외 안보 지원 프로젝트 대상국이다. 일본은 필리핀과 방위군 상호 접근 협정을 위한 대화도 진행 중이다. 사사카와평화재단은 “자위대가 인도적 지원이나 재난 구호 이외의 임무를 위해 필리핀에 배치되는 것을 촉진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은 이제 미국, 필리핀과 함께 남중국해 해양 순찰도 돈다.

변화를 추진할 때마다 나온 ‘극우 군국주의 망령’ 비판은 군사대국화를 향한 일본의 집요함을 꺾지 못했고, 국제사회는 이제 이를 낡은 프레임으로까지 치부하는 상황이 됐다. 지정학적 긴장이 국제사회 틀을 바꾸고 있는 시점, 한국도 장기적 관점의 전략적 사고와 전술의 중요성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