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쪽지] 나 하나 꽃 피어 꽃밭 되겠느냐지만

[철학 쪽지] 나 하나 꽃 피어 꽃밭 되겠느냐지만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입력 2024-04-20 00:32

조동화 시인의 시 ‘나 하나 꽃 피어’에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라는 구절이 있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묻는 그 마음은 무엇일까? 자신이 꽃을 피우고 싶지 않으면 그냥 꽃을 피우지 않으면 될 일이다. 굳이 ‘나 하나 꽃피운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는 원망 섞인 소리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게 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듯하다. ‘나 하나 꽃피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니 굳이 나는 꽃피우려고 노력하지 않겠다’는 변명을 하고 싶은 것이다. 왜 이런 변명을 하고 싶은 걸까. 꽃피어야 하고 물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자신을 변명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나만 헛된 노력을 하는 것이 싫다. 아무리 ‘하면 좋은 일’이라고 해도 나 혼자 애를 쓰다가 손해 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다른 사람 모두 노력한다는 전제가 아니라면 나도 노력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도 노력을 하게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는 열매를 누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밑거름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지는 않다. 체리 피커(얌체 같은 사람)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사실 공동체적 존재다. 많은 철학자는 공동체성이 인간에게 본질적이라고 주장했다. 홀로 인간이 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혼자서만 행복한 사람이나 타인의 따스한 눈길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타인이 전혀 없는 세상에 존재하고 싶은 사람도 없다. 소유가 중요해지다보니 소유권의 귀속 주체로서의 개인 개념이 중요해졌지만, 공동체성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외롭다.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가 되면 될 텐데 모두가 외롭다면서 괴로워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랑이나 공동체성처럼 귀중한 것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는 모두가 원하지만, 우리 현재의 경향성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얻기 힘든 그런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먼저 나서서 꽃을 심지 않는 우리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가? 이 노래에서 울컥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내가 꽃을 피우고 너도 꽃피우면 결국 온 세상 풀밭이 꽃밭 되는 것 아니겠느냐’ 하는 부분이다. 이 구절을 들을 때는 ‘정말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처한 조건을 넘어서서 자기가 자신을 결정할 때 뿌듯함을 느끼는 존재이다. 자신의 현재의 경향성에 결정 당하면서 내가 왜 꽃을 피워야 하느냐 하는 변명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서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스스로도 만족하고 세상에도 필요한 사람은 남이야 꽃을 피우든 말든 내가 꽃피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꽃피우는 것에 관심을 가지느라 남이 꽃을 피웠는지 말았는지 참견할 새가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인 것 같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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