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버려지는 열, 활용도 높여야 한다

[기고] 버려지는 열, 활용도 높여야 한다

하윤희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입력 2024-04-23 00:33

지난달 삼성전자와 한국지역난방공사가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재활용하기 위한 협약을 맺었다. 30도 정도로 배출되는 방류수를 히트펌프 기술을 활용해 인근 지역난방에 활용하는 것이 협약 내용이다. 고온수 배출로 인한 하천 생태계 교란을 막고 난방수 공급을 위해 전량 수입되는 LNG를 덜 사용해도 되니 에너지 안보에도 도움 되고 경제적이다. 거기다 온실가스 배출까지 줄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사조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활용할 수 있지만 버려지는 열원이 아주 많다. 이를 ‘미활용 열’이라고 부르는데, 사우나나 데이터센터 등지에서 나오는 건물 폐열, 오수처리에서 발생하는 하수열, 폐기물 소각열, 계절별로 외기 온도와의 차이로 얻어지는 지열, 해수·하천수열 등 다양하다. 2021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수요지 10㎞ 이내를 기준으로 미활용 열 공급 잠재량은 총 4962만4000G㎈(기가칼로리)에 달한다. 이는 2019년 지역 냉난방 공급량의 약 1.9배다. 산업공정에서 나오는 산업 폐열은 통계에 포함되지 않아 잠재량은 더 많다.

우리나라는 전력 중심의 에너지 정책으로 열 관련 제도가 매우 취약하지만 유럽 등 선진국은 미활용 열 활용에서 훨씬 앞서가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 목표 달성과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대안으로 미활용 열에 대한 관심도는 더 고조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회원국들은 법적으로 폐열을 재생에너지와 동등한 청정 열원으로 인정하고 히트펌프 보급을 위해 제도를 개편하는 등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미활용 열 활용의 전제조건인 열 지도를 구축해 미활용 열 잠재량 정보와 공급비용, 열 수요밀도 등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재생에너지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우리에게 저탄소 열은 매우 중요한 탄소중립 수단이다. 유럽에서 시사점을 얻는다면 미활용 열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수단 도입이 시급하다. 먼저 거버넌스가 구축돼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열 정책 전담 부서가 만들어져야 하고, 열 자원지도 구축과 통계를 전담할 기관이 지정돼야 한다. 미활용 열이 분산에너지임을 고려해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권한도 강화해야 한다. 미활용 열의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재생에너지에 준하는 지원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또 열병합발전 없이 미활용 열을 모아 수요처에 공급하는 4세대 지역난방 모델의 도입을 위해 90도 이하의 저온 열 공급기술 개발은 필수적 과제다.

국제 탄소 규제의 강화 추세를 고려하면 탄소중립은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배치돼야 한다. 최근 우크라이나·중동에서의 무력충돌, 미·중 간 긴장에 따른 자원공급망 위기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활용 열은 미개척된 국내 보유 청정자원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하윤희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