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경비원 갑질

[한마당] 경비원 갑질

한승주 논설위원

입력 2024-04-23 00:40

가끔은 아파트 경비원 관련 훈훈한 이야기도 들린다. 이를테면 8년 동안 근무해 온 경비원이 암 진단을 받고 그만두게 되자, 아파트 주민들이 일주일 만에 1000만원을 모아 전달했다는 소식이다. 지난달 수원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최근 전북에는 적극적으로 경비원 인권 보호에 나서는 상생 협약 아파트 59곳이 생겼다. 군산의 한 아파트는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에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보태 경비실 집기를 싹 바꿨다. 냉방기, 난로, 전자레인지, 냉장고, 정수기에 돌침대까지 들여놨다. 경비원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 돼야 살기 좋은 아파트가 된다는 생각에서다. 또 해고의 근거가 됐던 근로계약서의 ‘3개월 수습 기간’ 조항을 없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경비원 갑질은 여전하다. 관리소장이 경비원에게 자기 빨래를 하라고 지시한다. 입구를 막은 입주민 외제차에 불법주차 딱지를 붙였다가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2개월짜리 초단기 근로계약서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다음 날까지 모든 것을 반납하고 나가라는 통보도 받는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경비원 등 아파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상담받은 내용들이다. 경비원 94%가 1년 이하 단기 계약을 맺고 있다. 서울 강남 한 아파트 경비원이 관리소장의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숨진 지 1년이 넘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책임자 사과를 요구한 동료 경비원들에게 돌아온 것은 대규모 해고 통보였다. ‘경비원 갑질 금지법’으로 불리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이 2021년 개정됐지만 유명무실하다.

국민 10명 중 대략 8명은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 아파트 경비, 불법주차 감시, 재활용품 분리배출 정리, 잡초 제거, 택배 보관, 제설작업 등 경비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아파트 생활의 동반자인 경비원의 고용 안정과 근무 환경 개선은 입주민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비상식적인 갑질 행각은 사라질 때가 됐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