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외부인사 비대위’ 금지할 때

[돋을새김] ‘외부인사 비대위’ 금지할 때

하윤해 정치부장

입력 2024-04-23 00:38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국민의힘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 얘기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6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 취임했다. 4·10 총선 106일 전이었다. 한 전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1월 5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에 판사 출신인 정영환 고려대 로스쿨 교수를 지명했다. 총선 96일 전이었다. 총선을 이끄는 선장과 공천 과정의 최고책임자 모두 외부인이었다. 그것도 총선이 촉박한 시점에 중책을 맡았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당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선거 ‘투톱’을 맡는 것이 맞는가”라는 우려와 불평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인사들도 공천에 목을 매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불만이 확산되지 않았다.

특정 정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 가장 손쉬운 해법은 대중적 인기가 높은 외부인사의 영입을 통한 비대위다. 정당 내부에서 위기를 수습할 인물이 없는 것이 제일 큰 이유다. ‘시선 돌리기’ 효과도 있다. 영입된 외부인사 쪽으로 관심이 쏠리면서 그 정당이 안고 있던 문제가 희석된다.

극히 예외적인 성공 사례가 착시 현상을 일으킨 측면도 있다. ‘선거판의 차르’로 불리는 김종인 전 위원장이 대표적인 예다. 김 전 위원장은 거대 여야의 비대위를 모두 이끌어 본 한국 정치사의 유일한 인물이다. 김 전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맡았을 때는 민주당의 2016년 총선 승리에 기여했다. 김 전 위원장은 또 2020년 9월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영입돼 ‘박근혜 탄핵’ 이후 방향을 잃고 헤매던 국민의힘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을 제외하고는 성공 사례를 찾기 힘들다.

‘한동훈 비대위’도 여당의 위기 상황 탈출을 위해 꾸려졌다. 지역구인 울산 불출마 압력을 받던 김기현 전 대표가 자진사퇴하면서 한 전 위원장이 등판했다. 그는 ‘원맨쇼’로 총선을 이끌었다. 그러나 총선 참패는 모든 걸 뒤바꿔 놓았다. 시민과의 ‘셀카’는 뜨거운 인기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비쳤지만 이젠 ‘셀카나 찍으며 대권놀이를 했다’는 비아냥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표현에 따르면 ‘황태자’가 하루아침에 ‘폐세자’가 된 것이다.

여야 모두 비대위 관련 조항이 당헌에 있다. 국민의힘은 당헌 96조에 당대표 사퇴 등 지도부 궐위 상황을 비대위 설치의 전제조건으로 규정했다. 민주당도 당헌 제112조 3항을 통해 ‘당대표 및 최고위원 과반 이상 궐위’ 등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비대위가 구성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당은 민심이라는 바다에 떠 있는 돛단배로 비유된다. 잘나가는 정당이라도 언젠가 위기에 빠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 대처에 있다. 외부인사의 경우 당 내부 사정을 구석구석 파악하기 힘들다. 외부인사가 주도하는 비대위는 병의 원인을 찾아 없애는 치료를 하기보다는 증상에 대해서만 처치하는 대증요법(對症療法)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외부인사 비대위가 정당 내부에 미치는 악영향도 적지 않다. 위기 때마다 외부인사에 의존할 경우 소속 의원들이 정치적 파워를 키우는 것이 힘들어진다. 또 정당 내부의 문제 해결 능력이 퇴행할 우려도 크다.

당대표 등 지도부가 흔들려 비대위가 구성되는 것은 정당으로선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외부인사가 이끄는 비대위는 이제 끝낼 때다. 총선이 끝난 지금 여야 모두 ‘외부인사 비대위 금지조항’을 만들어 정당 내부에서 인재를 키우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발전시켜야 한다.

하윤해 정치부장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