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연기 출발점, 남은 삶 쏟아붓고 싶어”

“연극은 연기 출발점, 남은 삶 쏟아붓고 싶어”

원로 배우 박근형 연극 2편 잇달아 출연
신구와 함께 한 ‘고도를 기다리며’ 큰 흥행

입력 2024-04-27 06:12

원로 배우 박근형(83·사진)은 지난해부터 올해에 걸쳐 연극 2편에 잇따라 출연했다. 7년 만의 연극 복귀작이었던 ‘세일즈맨의 죽음’에 이어 ‘고도를 기다리며’까지 2편 모두 관객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또 다른 원로배우 신구(87)와 함께 출연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유례없는 흥행을 기록 중이다.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전 회차(50회) 전석 매진을 기록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전국 9개 극장 투어 역시 매진을 기록한 뒤 앙코르 공연에 들어갔다. 26일~5월 5일 국립극장에서 9회 공연한 뒤 지역 10개 극장에서 다시 투어 공연이 예정돼 있다.

최근 국민일보와 만난 박근형은 “관객이 이렇게 ‘고도를 기다리며’를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공연마다 객석이 꽉 차고 기립박수를 보내줘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령으로 장기 공연에 따른 건강 문제를 걱정하자 그는 “평상시 운동을 꾸준히 해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다. 신구 형님이나 나나 공연을 할수록 오히려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다”고 웃었다.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방랑자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가 실체 없는 인물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내용의 부조리극이다. 박근형은 디디 역을 맡아 고고 역의 신구와 찰떡 호흡을 보여준다. 부조리극은 원래 난해한 줄거리와 대사 때문에 몰입이 쉽지 않지만, 이번 ‘고도를 기다리며’는 원로배우들의 연기력 덕분에 관객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박근형(오른쪽)과 신구가 주역을 맡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 이 공연은 전 회차(50회)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파크컴퍼니 제공

박근형은 “신구 형님과 무대에서 호흡을 맞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82년 TV문학관 ‘조춘’에 함께 출연한 것 외엔 그동안 같이 연기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즐겁게 작업했다”고 밝혔다. 이어 “요즘 연극 작업은 희곡을 먼저 읽고 논의한 뒤 짧은 시간에 동선을 짠다. 반면 나나 신구 형님이 예전에 연극을 배울 땐 동선을 바로 익히면서 연습했는데, 그렇게 하면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사가 나온다. 이번에 오경택 연출가에게 얘기해 그런 방식으로 연습했다”면서 “관객들이 부조리극인데도 대사가 사실주의 연극처럼 자연스럽게 들린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사실 ‘연기의 교과서’로 불리는 박근형의 연기 출발점은 연극이다. 휘문고 1학년 때 연극부에 가입한 그는 그해 가을 전국연극대회에 ‘사육신’이란 작품으로 참가했다. 당시 연출은 휘문고 3년 선배이자 서라벌예대 학생으로, 장차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50년간 무대에 올린 연출가 임영웅이 맡았다. 고교 시절 내내 연극에 빠져 살았던 그는 유명한 배우 양성소였던 한국배우전문학원을 거쳐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중앙대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극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부터 여러 동인제 극단들을 오가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어요. 3년 정도는 연간 연극 11편을 한 적도 있어요. 그때는 눈이 벌게서 다녔어요. 연극 외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죠.”

1964~67년 국립극단 간판 배우로 활동한 그는 68년엔 극단 자유극장의 ‘따라지의 향연’에 출연해 제3회 동아연극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점차 방송과 영화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그런 그가 다시 연극에 돌아온 계기는 2012년 고 백성희 선생의 연락을 받고 국립극단의 ‘3월의 눈’에 출연하면서부터다. 20년 만의 연극 출연이었던 ‘3월의 눈’ 이후 그는 2016년 국립극단의 ‘아버지’에서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 연기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작품 선택에 까다로운 그는 여러 제안에도 지난해가 돼서야 ‘세일즈맨의 죽음’과 ‘고도를 기다리며’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TV나 영화를 하면서도 늘 연극 무대가 그리웠어요. 이제 제 남은 삶은 연극에 쏟아붓고 싶습니다. 다만, 앞으로 새로운 작품을 하게 될 때 가능하면 번역극이 아니라 창작극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소품이 아니라 대작이었으면 해요. 요즘 연극계는 예전에 제가 활동할 때보다 대형 창작극이 없어진 것 같아 아쉬워요.”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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