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오만하거나 독주하거나

[신종수 칼럼] 오만하거나 독주하거나

입력 2024-04-30 00:50

총선이 조폭과 양아치 대결 같았다는 정치권의 자성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현 정권이 싫어 야당 선택
민생 위한 협치 통해 부정적 이미지 쇄신하고 신뢰 얻길

국민의힘이 총선 참패 후 가진 세미나에서 한 낙선 후보가 “우리는 무능한 조폭 같았고 저들은 유능한 양아치 같았다”고 말했다. 조폭과 양아치 차이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둘 다 혐오스러운 존재들이다. 국민들 눈에 오십보백보, 피장파장, 거기서 거기다. 이번 총선에서 양당의 강성 지지자들을 제외한 합리적인 중도층들은 둘 다 싫지만 할 수 없이 누군가를 선택해야 했거나 차마 선택하지 못하고 기권했다. 말이 소중한 한 표,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이지, 영화 ‘소피의 선택’에서 두 자녀 중 누구를 살릴 것인지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비극의 역버전 같은 총선이었다.

마음에 거슬리면 격노하고 고집대로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 온갖 방법으로 범죄 혐의를 방탄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갖가지 방법으로 ‘비명횡사’시키는 야당 대표 가운데 우리는 누가 좋은지를 선택해야 했다. 둘 다 심판하고 싶은데,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좋아하라는 강요를 받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가족이나 친인척, 그들과 손잡고 각종 이권과 혜택을 누리거나 정치적 효능감을 즐기는 강성 지지자들 말고 합리적인 일반 시민들 중에 누가 이들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대선과 총선에서 양측은 각각 한 번씩 이겼다. 대선은 0.73%포인트, 총선은 5.4%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났다. 득표율만 보면 큰 차이도 아닌데 승자독식주의로 이긴 쪽이 마음대로 한다. 한쪽은 정부에서, 한쪽은 국회에서 협치를 거부한다. 독단적이거나 독주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 사례들을 굳이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이번 총선에서 독선과 불통에 대한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긴 쪽이다. 협치는 진 쪽보다 이긴 쪽이 안 하려 한다. 윤 대통령도 대선에서 이긴 후 2년 동안 이재명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이번에 총선에서 진 데다 지지율마저 23%까지 떨어지자 할 수 없이 만난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윤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특검 등으로부터 영부인을 보호하려는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일 것이라고.

총선 전에는 협치를 요구했던 민주당은 총선 승리 이후에도 협치를 요구할까.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하도록 초당적으로 협력할까.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에 새로 임명된 민형배 의원은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협치를 대여 관계의 원리로 삼는 건 총선 압승이란 민심을 배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선거에 이겼다고 협치를 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국회의장을 노리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조정식 의원은 “현안이 있으면 (여야 합의 없이도)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정성호 의원은 “의장은 기계적 중립만 지켜선 안 되고 민주당의 다음 선거 승리를 위해 깔아줘야(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갖고도 제대로 꼭지를 따지 못했다. 협치가 맹목적이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명색이 국회의장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 대표와 강성 지지자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충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차기 원내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는 강성 친명계이고 대여 강경 발언을 자주 해 왔다. 민주당은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마저 관례를 무시하려 한다. 이 대표와 개딸들에게 잘 보이려는 국회의장과 거야 원내대표, 상임위원장들이 앞으로 국회 운영을 얼마나 일방적으로 할지 짐작할 수 있다. 국민의힘도 친윤계 원내대표를 선출할 태세여서 22대 국회도 맨날 싸움만 하게 생겼다.

나라 안팎의 현안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만일 여야 협치가 안돼 민생이 도탄에 빠진다면 일차적으로 윤 대통령 책임이다. 동시에, 이 대표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민생 문제는 정권을 잡은 윤 대통령과 국회 권력을 쥔 이 대표 공동 책임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에서 심판을 받고 레임덕에 들어갔다. 앞으로 출마할 일도 없다. 대선에 출마할 이 대표가 심판받는 일만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민생을 위해 양보하고 타협하고 협조해서 협치를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들은 도장깨기 하듯, 다음에는 나머지 한 사람을 심판할 것이다.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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