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아버지의 자리

[청사초롱] 아버지의 자리

박수밀 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

입력 2024-05-08 00:38

대부분의 포유류 동물 세계에는 아버지라는 개념이 없다. 사자라든가 고릴라 등 일부 동물을 제외하면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는 동물은 찾기 힘들다고 한다. 포유류 가운데 자기 자식을 돌보는 수컷은 5% 남짓에 불과하다. 그래서일까. 우리 사회에서도 아버지의 자리는 엄마의 그늘에 가리어지곤 한다. 어머니는 헌신적인 사랑과 고향을 상징하고 따뜻함과 평온함을 떠올리지만, 아버지는 가정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강인한 존재로 인식되곤 한다. 고전 시가인 ‘사모곡(思母曲)’에서도 ‘호미도 날이지만 낫같이 들 리가 없습니다’라고 호미로 비유되는 부정(父情)이 아무리 깊다고 한들 낫으로 비유되는 모정(母情)에는 미칠 수 없다고 한다.

아버지 부(父)의 어원은 손에 회초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전통적인 엄부자모(嚴父慈母)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전통적인 아버지의 형상은 따끔한 회초리를 들고 자식을 엄하게 훈육하는 사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서운 존재다. 옛날의 아버지는 아내와 동등하고 자녀와 부드럽게 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부장적 제도 아래 가족을 엄하게 통솔하고 관리하는 군주의 모습이었다. 그러한 권위의식과 이미지가 일부 그대로 전해져 아버지라는 존재는 돈 벌어오는 사람,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 엄격하고 일방적인 사람으로 새겨진다.

그래서 아버지의 자리는 외롭다. 배고픈 시절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난쟁이’로 살아 왔고 외환위기 시절엔 집안 경제를 책임진 가장으로 삶의 무게를 견뎌 왔다. 21세기의 많은 아버지는 때로는 기러기아빠가 되기도 하며 자녀들로부터, 손주들로부터 소외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가부장적 절대권위의 과거 이미지는 꼰대로 몰리고 소외와 외톨이로 밀려나는 구실이 될 뿐이다. 아버지는 겉으로는 굳세고 당당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연약하고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이다. 김현승 시인은 ‘아버지의 마음’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바쁜 사람들도 / 굳센 사람들도 /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 어린것들을 위하여 / 난로에 불을 피우고 /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엄마의 어깨 뒤에서 자식을 바라보는 외로운 사람이다.

한때 회자하였던 가시고기의 삶은 아버지의 자리를 상기시킨다. 가시고기는 암컷이 알을 낳은 뒤 떠나 버리면 수컷이 혼자 남아 알이 잘 부화하도록 쉼 없이 지느러미로 산소를 불어넣는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알을 보호하던 수컷은 알이 부화할 때면 기력이 다해 자신의 몸을 태어난 새끼들에게 내어주고 죽어간다. 그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아버지도 어머니와 똑같은 크기로 자식을 사랑할 것이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는 당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고단함 속에서 외롭게 삶을 버텨 왔다.

어느덧 팔십 대 중반이신 나의 아버지도 곡절 많은 시대를 외롭게 살아오셨을 것이다. 가장으로서 평생 가난하고 고달프게 살아오셨으나 아버지로서는 당신의 책임을 다하셨고 자식들을 잘 키워내셨다. 가끔 고혈압과 당뇨, 식습관을 걱정하면 말끝마다 습관처럼 말씀하신다. “난 괜찮으니 염려하지 말아.”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삼십 대 시절의 아버지는 닮고 싶지 않은 분이었지만 지금의 아버지는 연민과 안쓰러움만 남았다. 훗날 아버지가 보이지 않게 될 때는 어떤 아버지로 남게 될까.

그런 아버지께서 어버이날에 암 수술을 받으신다. 아버지의 자리를 변함없이 오래 지키실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

박수밀 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