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복잡한 도시 질서… 소외되는 노인들

빠르고 복잡한 도시 질서… 소외되는 노인들

[박중철의 ‘좋은 죽음을 위하여’]
⑨ 노인을 위한 도시는 없다

입력 2024-05-14 06:1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유명한 소설이자 영화의 제목이다. 영화를 보면 내용과 제목을 사뭇 연결 짓기가 어렵다. 하지만 제목에는 숨은 뜻이 있다. 이 제목은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급격히 세상이 변하면서 인간성이 사라지고 결국 노인들은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렵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영화는 베트남 전쟁 이후 혼란에 빠져 예측 불가의 잔혹 범죄가 늘어가는 미국의 사회 상황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현대 도시 사회 역시 노인을 위한 공간도 배려도 없다. 정확히 말하면 노인이 인간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역할이 없다. 윌리엄 버틀러의 시에서 노인은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미래를 예견하는 현명한 존재다. 이는 전통 사회에서 노인의 오랜 역할이었다. 김형숙은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에서 마을 구성원 사이 갈등이 생기면 늘 노인이 나서서 중재하고 화해를 시켰다고 말한다. 노인은 지혜라는 권위를 갖고 마을의 평화를 지키는 원로로 늘 추앙받았다.

얼마 전 인천공항 전망대로 매일 출·퇴근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퇴직 후 가족과 사회로부터 고립된 노인들이 쓸쓸함을 달래고자 전철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모여들어,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며 하루를 보내다 간다는 것이다. 부산에서는 전철역 광장에 노인들이 모여 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종종 다툼까지 일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은퇴 후 사회적 역할이 사라지고 핵가족 시대에 자녀들과도 떨어져 고립된 노인들이다.

한국 사회의 기대 수명은 계속 증가하고 노인으로 지내야 하는 시간도 늘었다. 하지만 퇴직 후 긴 노년의 삶에 대한 준비는 거의 전무하다. 연금을 마련하고 장례를 위한 상조에 가입하는 것을 노년 대비라고 할 뿐, 어떻게 노년에도 자존감을 채우며 살지 실존 문제는 고민하지 않는다. 도시는 치열한 경쟁과 복잡한 시스템으로 고도화된 효율성을 추구하는 생존 공간이다. 빠르고 복잡한 도시 질서에 적응할 수 없는 노인들은 철저히 소외된다. 모두가 뛰는 전철역에서, 안내가 없는 상점 키오스크 앞에서 노인은 서글프다. 그러다 너무 뒤처져 자녀 세대의 생존과 사회 질서에 방해가 되면 요양 시설로 격리된다. 노인을 위한 도시는 없다.

가톨릭의대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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