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집회의 두 표정… 제자 지키는 선생님, 환자 버린다는 선생님

[이도경의 에듀 서치] 집회의 두 표정… 제자 지키는 선생님, 환자 버린다는 선생님

입력 2024-05-15 00:37 수정 2024-05-15 00:37
교사들이 지난해 9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 추모 집회에서 묵념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서이초 사태 분노 교사들 거리로
49재 뺀 모든 집회 토요일 진행
민심 공감… ‘교권 4법’ 국회 통과

의대 증원 반발 의사들 사직 엄포
장차관 경질 요구… 막말도 쏟아내
특권의식 계속 땐 힘든 싸움될 것

어떤 집단의 평판을 입에 올릴 때는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판적으로 다룰 때는 특히 신중해야 하죠. 일탈 행위를 하는 구성원들이 과대 대표되지는 않았는지,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이들의 마음마저 꺾는 일은 아닌지 두루 살펴야 합니다. 그래도 집단마다 떠오르는 이미지는 존재합니다. 집단의 행위가 축적돼 만들어진 이미지일 수도, 우연한 사건을 통해 각인된 경우도 있습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에서 진면목이 드러나 기존 평판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지난해 여름 교사들의 분노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서울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 차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자 교사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분노는 격렬했지만 품격은 잃지 않았습니다. 사태 초반만 해도 젊은 교사의 죽음을 정치와 연결한 ‘정권 퇴진’ 구호 등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부의 강력한 비판을 받고 사그라졌습니다. 일부 무도한 학부모나 교사 보호에 미온적인 교장과 교감, 학부모 표를 의식하는 교육행정가들을 향한 정제되지 않은 막말도 없지 않았지만 주류의 목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집회는 교육적이었습니다. 뙤약볕 아래 검정 옷을 입고 모인 얼굴에는 노기(怒氣)가 서려 있었지만 행동과 발언에는 절제가 배어 있었습니다. 경찰은 마치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모여 있어서 참석 인원을 산정하기 쉬웠다죠. 행진하면서도 교통법규를 준수했습니다. 건널목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당연하다는 듯 행렬이 멈춰 섰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흔한 무단횡단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집회 뒤 질서 정연하게 귀가했고 머문 자리에는 쓰레기가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부차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이 본업을 대하는 자세가 돋보였습니다. 교육부가 집계한 교사 집회는 지난해 7월 22일부터 지난 2월 17일까지 모두 12차례였습니다. 이 중 서이초 교사 사십구재를 겸한 집회를 빼고는 모두 토요일에 진행됐습니다. 동료 교사들의 잇따른 사망 소식에 “다 그만두고 교단서 내려오고 싶지만 교실에서 아이들 얼굴 볼 때마다 생각을 고쳐먹는다”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학부모들은 교사 집단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배우려면 교권이 서야겠다’는 공감을 끌어낸 결과로 봅니다. 서이초 교사 사망 두 달 뒤 지난해 9월 21일 ‘교권 4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야당 대표와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본회의에 올라오며 정쟁이 휘몰아치던 와중에도 맨 앞 안건으로 처리했습니다. 교사들이 제자들을 외면하고 나와 학교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면 아마도 다른 전개가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지난 3월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열린 전국의사 총궐기대회 집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석 달 가까이 또 다른 ‘선생님 집단’의 분노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붙은 것은 비슷한데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매우 다릅니다. 의사 집단은 우리 사회에서 활동할 의사 수를 스스로 결정하겠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의 재가를 받지 않고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렸다고 환자 곁을 떠나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황당한 주장입니다. 소방관 수를 소방관들이 정하지 않습니다. 경찰도 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들의 요구는 군인이 병력 규모를 스스로 정하겠다는 발상과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한 필수 영역의 인력은 국가와 사회가 정하는 게 상식적입니다. 의사에게만 허용해온 이런 특권은 생명을 볼모로 한 ‘벼랑 끝 전술’이 먹혀온 결과입니다.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고통받을 때도 이 전술로 정부가 백기를 들었죠.

의사들의 분노 메시지에는 특권의식이 투영된 막말이 섞여 나옵니다. 의사 커뮤니티에서 정제되지 않고 나오는 발언이 아닙니다. 의사들의 대표 격 인사들의 언어라서 충격을 줍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의사가 된다’는 말로 비난을 자초했고, 소말리아 의대 졸업사진을 올려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지난 4·10 국회의원 선거 당시엔 20~30석이 의사 단체 손에 있다고 했고, 선거 직후엔 의대 증원 때문에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했다고 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을 대화 조건으로 내걸기도 했습니다. 장·차관 인사권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부여받아 행사하는 권한입니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라니, 자신들을 국민 위에 군림하는 귀족으로 여기는 걸까요.

“너희 같은 의원들이 왜 먹고 사는지 아는가. 너희 재주가 잘나서가 아니라 사람 목숨이 질겨서야.” 영화 ‘혈의 누’에서 주인공 이원규(차승원 분)가 죽어가는 노인을 외면하는 의원에게 일갈하는 대사입니다. 그들의 선민의식을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긴 한데 아직은 과하다는 느낌입니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아깝지 않은, 묵묵히 환자 곁에서 자기 길을 가는 의사들이 있기 때문이죠.

의대 2000명 증원은 2029학년도까지입니다. 정부는 이후 상황에 대해 말을 아낍니다. 차기 정부 몫이란 입장으로 읽힙니다. 줄이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5058명 교육하도록 교수도 뽑고 시설·기자재를 늘려놨으니까요. 입학 정원을 200명에서 40명대로 줄이는 대학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지자체 반발은 거셀 겁니다. 입시도 출렁이고 수험생·학부모 불만도 클 겁니다. 무엇보다 필수·지역의료 인력이 확충됐는지가 쟁점이 될 겁니다. 의사 집단 입장에선 차기 권력과도 일전을 벌여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특권의식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때도 외롭고 힘든 싸움이 될 겁니다. 교사들이 결국 정부와 정치권을 움직인 비결은 어떤 경우에도 제자 곁을 떠나지 않았던 선생님들의 ‘품격’이었습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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