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대통령의 ‘그야말로’

[뉴스룸에서] 대통령의 ‘그야말로’

이경원 정치부 차장

입력 2024-05-15 00:38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때 수첩에 적어둔 이런저런 질문 중엔 “‘그야말로’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 걸 아시느냐”는 것도 있었다. 대통령의 공식석상 발언들을 곱씹어 보면 어김없이 ‘그야말로’가 등장했다. 절정으로 치닫는 부분을 가르쳐주는 지휘자의 신호 같았다. “할 만큼 해놓고 또 하자는 것은 그야말로 특검의 본질이나 제도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살아보기 위해 애를 쓴 것이다.” 보다 중요한 질문도 있었고 결국 묻지 못했으나, 대통령은 그날 기자회견에서도 ‘그야말로’를 여섯 차례 발언했다.

‘그야말로’는 전달하고자 하는 사실을 강조할 때 쓰는 부사다. 주저하는 말이 아니라 확신에 기반한 언어이며, 앞뒤의 간격을 좁혀 끌어당기고 다른 여지를 없애는 힘 있는 단어다. 에두르지 않고 핵심에 육박하는 화법은 그간 윤 대통령다움으로 설명돼 왔다.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만드는 명쾌한 태도가 특별수사를 돌파하는 힘이라 말하는 이도 많았다. “이렇게 된 마당에 사실대로 다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대통령의 오늘은 어쩌면 11년 전 국정감사장에 불려나온 여주지청장의 결연한 화법에서 출발했다.

이 화법을 두고 누군가는 흑백이 명쾌히 판가름나는 형사소송의 세월을 가늠한다. 누군가는 오랜 고시 공부와 박학을 엿보고, 또 누군가는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야당의 역할을 말한다. 그런데 원인이 무엇이든 한편 중요한 것은 ‘그야말로’로 당당히 이어 붙이기에는 세상이 퍽 다면적이라는 점이다. 소신과 과신의 사이, 집념과 집착의 경계가 흐려질 때 참모들도 고심이다. 대통령이 그야말로 힘줘 말했는데 참모들이 본뜻을 재차 설명하는 때도 있었다.

옳고 그름의 논증이 물론 중요하겠으나 정치와 민생은 때로 좋고 싫음으로 문제를 푸는 장이다. 지지율은 시험 점수가 아니라 호감도에 가깝다. 한 원로 법조인은 윤 대통령의 지난 2년을 두고 “제시해 놓는 방향은 ‘글로벌 스탠더드’인데, 목적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여권이 총선에서 패배한 뒤 대통령실에서 나온 말도 ‘국정 기조의 방향 자체는 옳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방향은 옳다’가 맞는지 틀리는지 논증하기 전에, 이 말에 공감되고 설득되는지 먼저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총선 이후 한 여권 관계자는 “국민들의 화난 마음은 결국 리더들의 태도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지도자에게는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존중이 우선 있어야 하고, 뭘 말하는 장면은 때로는 어눌해야 어울릴 것이다. 정치 자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면서 공동체를 유지할 방법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호소는 정치와 모든 정부의 근간을 흔들어놓게 된다’고 짚었다. 사실의 영역에서야 ‘그야말로’는 얼마든지 허용되겠으나 의견의 영역에서 ‘그야말로’는 서로의 거리를 벌린다.

윤 대통령은 변화를 천명했다. 대통령 태도가 바뀌면 국민 태도도 변할 것이다. 마음 먹으면 되는 쉬운 일만은 아닐 듯하다. ‘영수회담’ 직후 ‘채상병 특검법’이 강행 처리되는 장면을 보면서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협치를 깼다느니 하지만 현실정치는 냉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냉정한 현실은 또 다가온다. 가족 수사는 리스크일 수도 있고, 그야말로 대통령이 대통령다움을 보일 기회일 수도 있다.

이경원 정치부 차장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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