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질투는 기업에 힘이다

[내일을 열며] 질투는 기업에 힘이다

강주화 산업2부장

입력 2024-05-16 00:35 수정 2024-05-16 09:20

얼마 전 외신에서 미국 보잉사의 첫 유인 우주선이 밝은 조명 아래 서 있는 사진을 보았다. ‘CST-100 스타라이너’였다. 그런데 발사 2시간 전 안전 문제로 발사가 취소됐다고 한다. 보잉은 우주비행 부문에서 경쟁사 스페이스X에 한참 뒤지고 있다. 나사는 10년 전 우주비행사를 태울 일명 ‘우주 택시’ 사업자로 보잉과 2002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를 선정했다. 그때만 해도 주사업자는 보잉이었다.

108년 역사의 보잉은 인류 최초의 달 탐사 아폴로 계획(1961~1972)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민간 기업이니까. 하지만 스페이스X가 2020년 보잉보다 먼저 사람을 우주 궤도에 실어 날랐다. 현재 나사를 비롯해 유럽우주국, 한국 등이 참여하는 유인 우주 탐사 계획 ‘아르테미스 계획’이 진행 중이다. 보잉은 여기에 달 착륙선 제안서를 냈지만 후보가 되지도 못했다. 해당 사업은 스페이스X가 따냈다. 보잉엔 이 모든 게 굴욕이다.

업계에선 품질보다 수익을 우선시한 경영이 보잉을 쇠퇴의 길로 이끌었다고 진단한다. 반면 후발 주자 스페이스X는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보잉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나사로선 아쉬울 게 별로 없다. 두 기업의 경쟁을 부추겼고 지금 스페이스X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잉과 스페이스X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국내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 줄곧 삼성전자를 뒤따르던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시대 수요가 급증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경쟁사를 앞서고 있다. 과거 SK하이닉스 관계자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삼성전자를 이기고 싶지 않습니까?” 그분은 껄껄 웃으며 답했다. “형님 뒤만 따라가면 되니까 편한 면도 있습니다.” 이 말은 페인트(feint·운동 경기에서 상대편을 속이기 위한 동작)였다.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 점유율은 53%였다. 삼성전자가 38%, 마이크론이 9%로 뒤를 이었다. 메모리반도체에 주력하는 SK하이닉스와 시스템LSI, 파운드리 사업까지 다 하는 삼성전자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어째든 SK하이닉스가 HBM에서 앞서나가며 삼성전자의 강력한 라이벌이 됐다.

시장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경쟁은 발전의 추동력이다. 시장의 우위에 안주하면 선택을 받을 수 없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1분기 영업이익률에서 글로벌 1위에 올랐다. 그러나 국내 소비자의 반응은 다소 싸늘하다. 차값이 올라가는 만큼 품질이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불만이다. 정의선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품질을 강조했지만 현대차·기아의 리콜 규모가 이미 51만대를 넘어섰다. 안전 결함이 주된 이유다.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은 73%(110만115대)에 달했다. 반면 KG모빌리티 등 중견 3사 점유율은 8.3%(12만4591대)에 그쳤다. 현대차·기아가 국내에서 독주하는 데는 위협적 경쟁자가 없는 게 작용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을 소비자들이 반가워하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합병이 이뤄지면 경쟁이 사라지고 결국 비싼 항공권과 낮은 서비스를 감수해야 한다는 우려다.

경쟁 없이 발전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질투할 대상이 있을 때 뭔가 더 열심히 한다. 기업은 경쟁할 대상을 찾아 제품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한다. 경쟁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어제와 오늘의 자사 상품을 놓고 비교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것이다. 바로 혁신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기업은 언젠가 시장에서 밀려난다. 불꺼진 보잉의 우주선 발사대가 그걸 보여준다.

강주화 산업2부장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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