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지도자의 책임, 지도자의 태도

[바이블시론] 지도자의 책임, 지도자의 태도

손화철(한동대 교수·글로벌리더십학부)

입력 2024-05-17 00:35

대통령이 오랜만에 연 기자회견의 모두발언을 하면서 ‘The Buck Stops Here!’라고 쓴 명패를 앞에 두었다. 고유언어와 문자가 있는 나라의 대통령이 생소한 외국어로 자기 의지를 밝힌 것이 잘 이해되지 않지만, 어쨌든 전 국민이 유래조차 모호한 영어 표현 하나를 배우게 되었다.

언론의 설명에 따르면 이 말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의미라 한다. 미국 대통령들이 이 말을 종종 쓰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 명패를 선물한 것도 그것이 지도자의 막중한 책임을 표현해서일 것이다. 예컨대 이런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대통령과 참모가 모여 증세나 전쟁 같은 중요한 판단에 대한 갑론을박을 벌인다. 상반된 의견이 제기되는데 두 선택지 모두 합당한 근거나 위험 요소가 있다. 급박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되면, 대통령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선언해야 한다. ‘The Buck Stops Here!’ 모든 논란은 마무리되고 이제 결정 사항을 실행에 옮기는 노력이 시작된다.

그런데 대통령이라 하여 그 선택이 맞는지 확신할 수 있을까. 책임진다는 말은 멋있지만, 미래를 모르는 인간에게 진정한 의미의 책임이란 비현실적이다. 좋은 결정이라도 일이 잘못되어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누구도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 없다. 작은 금전적 손해라면 배상이라도 할 수 있지만, 어떤 결정 때문에 인명 손실이 나면 누군가 책임을 지고 직에서 물러난다 해도 죽은 사람이 살아오지 않는다. 국정과 관련된 주요 결정도 마찬가지다. 결과가 나쁘다 하여 결정을 내린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하고 심지어 벌을 주거나 역사에 오명이 남아도 국가와 국민이 감수해야 하는 손해는 그대로 남는다.

이렇듯 지도자의 결정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으며 그가 그 결정의 결과를 고칠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상식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지도자는 왜 굳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고 사람들은 왜 그 말을 신뢰하거나 불신하는 것일까? 도대체 책임을 진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책임의 선포와 그에 대한 반응은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이 자기 결정의 무게와 맥락을 충분히 아는지와 연결되어 있다. 지도자가 어떤 결정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다양한 의견과 선택지를 그 각각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까지 감안해 깊이 고민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렇게 하면 꼭 성공할 거란 자신감의 분출이 아니라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좋은 결과를 진심으로 바라는 지도자의 고뇌와 일정한 두려움의 고백이다. 동시에 이제는 논란을 멈추고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그 노력을 함께 경주해 달라는 호소가 거기 담겨 있다.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것을 알면서도 진실하고 진지한 지도자가 책임을 스스로 떠안으면 사람들은 일말의 안도감을 느낀다. 설사 자기 판단이 지도자의 결정과 달라도 그의 고뇌가 느껴지기 때문에 그 결단을 존중하고 미래를 함께 도모하게 된다. 반대로 지도자의 결정이 모두가 아닌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보이거나 그가 그 결정의 무게와 의미를 모른다는 의문이 생기면 동요가 일어난다. 심지어 그 결단의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조차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지도자가 실제로 질 수 있는 책임은 일의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한계와 자기 결정의 무게에 대한 겸손하고 깊은 성찰과 그에 따른 진실하고 간절한 태도가 책임의 핵심이다. 그런 태도를 갖춘 지도자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하면 조직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동력을 얻지만 그렇지 못한 자가 말하면 사람들은 냉소에 빠지고 조직은 혼란에 처한다.

손화철(한동대 교수·글로벌리더십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