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오월의 응급실

[창] 오월의 응급실

조효석 영상센터 뉴미디어팀 기자

입력 2024-05-18 00:39

“119가 여기로 가라고 해서 왔는데….” 여자의 등에는 서너 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힘없이 업혀 있었다. 간호사는 이런 설명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듯한 눈치였지만, 그럼에도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희가 지금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이 근무 중인 분이 안 계셔서요.” 마지막 말을 망설이던 간호사가 말끝을 흐렸다. “다른 병원을 가보시는 게…·.” 그의 설명이 무색하게도 건물 입구에는 ‘소아전용응급의료센터’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들른 건 5월의 어느 토요일 점심께였다. 몇 시간이나 대기한 끝에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려운 수술은 아니었지만 정한 시일을 넘기면 안 된다고 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빠른 수술은 어렵다기에 집 근처 종합병원을 입에 담자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거긴 수술 못할 거예요. 상황이 더 나빠서….” 곡절 끝에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기사에서나 접하던 현장을 눈앞에서 보니 위기가 더 심각히 다가왔다.

꼭 응급실을 방문해보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역치를 넘은 지 오래다. 연초만 해도 속 시원하리만치 강경한 정부의 태도에 환호하던 이들조차 길어진 싸움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 의사들이 떠난 병원에서 살릴 수 있던 목숨이 그간 얼마만큼 죽어갔는지, 또 아파할지를 셈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 정부와 의사들의 주장 둘 중 어떤 게 옳은지는 사실 당장 병실 앞에서 발만 구르는 환자들에겐 그리 쓸모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공의 파업이 시작된 게 지난 2월 중순이니, 벌써 3개월이 다 되었다. 어느덧 5월 중순, 광주민주항쟁을 기념하는 때가 다가왔다. 언제나 그렇듯 광주 망월동 묘지를 방문하는 정치인의 행렬이 줄을 잇고, 희생자를 향한 추모의 메시지도 지면 한켠, 뉴스 한 꼭지를 차지할 테다. 이리 의미 깊은 날에 생뚱맞아 뵈는 응급실 이야기를 꺼낸 건 당시의 역사 현장에서 얼마간 되새겨볼 일이 있어서다.

항쟁의 주요 장소인 금남로, 그리고 구 전남도청 건물로부터 도보 10여분 거리에는 전남대병원이 있다. 의료인들의 증언을 수록한 책인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에 따르면 이곳은 당시의 참혹함이 드러난 또 다른 현장이었다. 진압군에게 구타당하거나 대검에 찔리고 총에 맞은 사람들이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쏠렸다. 병상이 부족해 이송용 병상을 일반 병상 사이마다 배치해야 했고, 사무실 앞에 매트리스를 깔아 환자가 오는 대로 눕혀야 했다.

공수부대가 금남로에서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 했던 5월 21일 오후, 한 의사는 출혈과 통증으로 고함을 지르는 환자들로 응급실이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고 기억했다. 수술대기실로 옮겨 순서를 기다리던 총상 환자가 “절 죽게 내버려 두실랍니까?” 하고 애원하다 결국 과다출혈로 숨을 거뒀다는 증언, 수혈할 혈액이 부족해 수술 자체를 포기한 환자가 있었단 이야기도 책에 적혀 있다.

병실까지 총알이 수시로 날아드는 상황에서도 의사들은 밤을 새우며 수술 수십 건을 집도했다. 너무 많은 수술을 해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설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환자가 너무 많고 상황이 급해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치료비를 받지도 못했지만 일단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집념으로 병실을 지켰다. 간호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간호과장의 공지에도 그들은 모두 간호복을 입고 병실로 나왔다.

헌신한 건 의료인들뿐만이 아니었다. 군이 도시를 봉쇄해 수액 공급이 막히자 병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이 응급실부터 수액을 쓰라며 양보하기도 했다. 환자에게 수혈할 혈액이 모자라자 시민들이 혈액원 입구에서부터 병원 정문까지 길게 줄을 서가며 헌혈에 나서기도 했다. 연령상 헌혈을 할 수 없는 학생과 노인들도 헌혈하겠다고 찾아와 돌려보내는 일도 잦았다.

이렇듯 우리가 ‘오월 광주’에서 배울 건 민주화를 향한 열망뿐만이 아니다. 동료 시민을 구하려 목숨을 걸고 수술대와 병상을 지켰던 의료인들, 또 서로를 살리려 팔을 걷어붙인 시민들의 인류애와 헌신이야말로 어쩌면 지금 우리가 되새겨야 할 덕목이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언제 끝날지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게 버려두거나 쉽게 나을 환자를 더 고통받게 방치하는 현 상황이 더 이어져선 안 된다.


조효석 영상센터 뉴미디어팀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