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가정의 달에 생각하는 부모다운 부모

[국민논단] 가정의 달에 생각하는 부모다운 부모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24-05-20 00:34

지난 5년간 부모의 폭력으로
사망한 아동만 191명
과도한 교육열과 끝없는 간섭
과연 순수한 사랑일까

콤플렉스 컸던 조선 영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집착
희대의 비극으로 끝나

자식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부모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영하고 있지는 않은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사흘 터울로 잇따른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인간관계의 초석과도 같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기본 관계를 적시한 강령으로는 삼강오륜이 으뜸이다. 성인이 되어서야 경험하는 군신 관계와 부부 관계를 제외할 때, 삼강과 오륜에 모두 들어있는 관계로는 부자 관계가 유일하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래서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규범을 만들지 않은 문명은 역사상 없다.

하지만 부모라고 성인(聖人)은 아니다. 부모의 사랑도 하해와 같지 않다. 무조건적이지도 않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다분히 계산적임은 오래전에 한비자(韓非子)가 예리하게 지적했다. ‘아들을 낳으면 기뻐 서로 축하하면서 딸을 낳으면 왜 불평하는가’라는 날카로운 반문이 바로 그것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님의 공평하고도 절대적인 자식 사랑을 표현한 속담이다. 하지만 덥석 동의하기는 어렵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물론 없지만, 덜 아프거나 더 아픈 손가락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한비자의 지적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동안 191명의 아동이 부모의 가정폭력으로 숨졌다. 사망까지 이르지 않은 아동학대는 부지기수다. 영아 살해나 유기도 끊이지 않는다. 참담한 현실이다. 폭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릴 때 부모의 편애나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부모로부터 크고 작은 상처 한번 받아보지 않은 이는 또 얼마일까. 부모의 사랑도 한 번쯤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에는 부모 개인의 욕망과 집착이 뒤섞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교육열과 끝없는 간섭은 과연 순수한 사랑일까.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고, 푸른 바다 그보다도 깊은 부모님 은혜는 어떤 욕망도 배제한 순수함일까.

조선시대 대표적 비극 서사인 사도세자 사례를 보자. 영조는 목숨을 건 정치투쟁 끝에 왕좌에 앉았으나,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구설수에 평생 시달렸다. 친모마저 천민 출신 나인이었다. 본능적으로 왕의 권위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자식만큼은 흠결 없이 성장하기를 원했다. 첫 세자를 잃고 후사가 없던 차에 마침내 아들이 태어났으니, 바로 사도세자였다.

아들에 대한 영조의 애정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도를 넘은 집착이었다. 아이의 자연적 성장 단계를 무시한 채 자기 기준으로 다그쳤다. 아이로서는 24시간 감옥도 그런 감옥이 없었다. 열 살쯤부터 아이는 빗나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아버지의 분노와 질책 강도도 세졌다. 아이는 그런 아버지를 무서워하면서도, 아버지 눈을 피해 일탈하는 요령도 터득해 갔다. 10대 후반에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심이 하루에도 몇 차례나 엇갈렸다.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애꿎은 내관과 궁녀가 수도 없이 죽임을 당했다.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언동도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영조는 28세 아들을 뒤주에 넣어 죽여버렸다.

아버지는 자기 콤플렉스를 물려주지 않으려다가 그만 집착에 빠져 아들을 망쳐버렸다. 그는 아버지가 아니라 엄혹한 교관이었을 뿐이다. 아들을 아들로 보기보다는 마치 훈련병처럼 굴리기만 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죽이는 기막힌 광경을 목격한 손자 정조는 어려서부터 이미 눈치가 100단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면의 트라우마도 강해졌다. 왕이 되고서도 그는 아무도 믿지 못했다. 하급 관리들이 처리할 문서까지 밤새워 스스로 결재해야 안심이었다.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과로사로 죽고 말았다. 원인 제공자는 당연히 할아버지 영조였다. 영조는 부모로서는 빵점이었다.

이게 그저 옛날얘기만은 아니다. 지금도 온 나라 부모들이 집단 히스테리에 걸린 듯이 자식을 옭아맨다. 자식에게 집착하는 순간 부자 관계는 깨진다. 부모가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영하면, 그 관계는 대개 파국으로 치달린다. 부모는 자식에게 여러 모습이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교사로, 인생 선배로, 상담자로, 친구로 자식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다운 부모가 되려면 부모도 제대로 공부하며 자격을 갖춰야 한다.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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