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경청의 기술

[살며 사랑하며] 경청의 기술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입력 2024-05-24 00:33

날이 점점 푹해져서 숱 많은 머리카락이 무겁게 느껴졌다. 단골 미용실이 문을 닫은 터라 그날은 골목 안쪽에 자리한 미용실에 첫발을 디뎠다. 오래된 미용실이라 간판도 허름하고 내부도 낡았다. 주인아주머니가 한 청년의 머리카락을 드라이어로 말리는 중이었다. 자연스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에구, 어떡해. 전보다 더 커졌네!” “전에는 오십 원짜리만 했는데 지금은 오백 원짜리가 됐어요.”

듣자 하니 청년은 원형 탈모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모양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마치 어린 동생 타이르듯이 이렇게 물었다. “요새 잠은 잘 자는겨? 전에 통 못 잤다고 했잖아. 열이 머리에 몰리면 머리카락이 더 빠지거든.” 명확히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말이었지만 주인아주머니의 말대로 청년의 머리에 열이 몰렸는지 얼굴이 붉었다. 청년은 주저리주저리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가 사는 동네가 공공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된 모양인데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요새 통 잠을 못 잔다고 했다.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주인아주머니는 사려 깊은 상담사나 다름없었다. 청년이 물어보는 말 외에 불필요한 질문은 하지 않고 적절한 추임새만 거들었다. 섣불리 대안을 제시하며 조언하기보다 귀 기울여 들어주는 편이었다.

한자리에서 오래 영업한 미용실답게 주인아주머니는 ‘경청’하는 데 내공이 있어 보였다. 이런 분위기라면 누구라도 허물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싶을지도 모른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주인아주머니는 애써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 공백을 잘강거리는 가위질 소리가 채우도록 두었다. 사랑방 같은 미용실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다. 참견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때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주인아주머니는 입을 닫고 귀를 여는 지혜를 터득한 모양이다. 주인아주머니로부터 ‘경청의 기술’을 배운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