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박찬대 행보에 눈길이 가는 이유

[여의춘추] 박찬대 행보에 눈길이 가는 이유

고세욱 논설위원

입력 2024-05-24 00:37

반도체 총력 지원·종부세 완화 민주당 찐명 원내대표가 거론
표심 위한 립서비스라 해도 민생입법 협치로 가면 바람직
진영 넘어 법안 통과시킨 美 존슨 하원의장처럼 됐으면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 대한 투자 세액공제 일몰 연장 외에 보다 적극적인 국가 차원의 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아무리 비싼 집이라도 1주택이고 실제 거주한다면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서 빠져야 한다. ”

국민의힘이나 대통령실 인사라면 자연스럽게 하는 말이다. 당연하기에 뉴스 가치나 감흥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달 초 이 말들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해지며 화제가 됐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발언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박찬대가 누군가. 국회의장 후보와 달리 잡음 없이(?) 거대 야당 원내대표로 뽑힌, 자타공인 친명을 넘는 ‘찐명’ 인사다. 총선 기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재명) 대표의 코를 대신 파주는 비위 좋은 아부꾼만 살아남는 민주당”이라고 꼬집을 때 아부꾼으로 지목된 이다. 25만원 민생지원금 지급, 민주유공자법 처리 등 포퓰리즘, 진영 투쟁의 지휘자다. 그런 그가 ‘부자 감세 반대’라는 당의 정체성과 다른 대기업 지원, 종부세 완화를 얘기했다.

인터뷰한 보수 매체에 대한 립서비스 혹은 중도층 표심을 향한 노림수일 수 있다. 지난 대선 “종부세는 세계가 부러워할 K-세금”이라는 글을 SNS에 공유한 전력도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이 대표 결정만 따를 사람의 언행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반응도 많다. 그럼에도 과거와 다른 국회에서의 무게감에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진 않는다.

입에 발린 소리든 어떻든 그의 주장은 옳다. 세계는 반도체, 인공지능(AI)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천문학적인 보조금, 세금 면제 동원은 기본이다. 외국의 여야가 여기에 이견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종부세도 민주당이 결자해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 문재인정부 때 종부세는 2017년 3878억원에서 2021년 5조7000억원으로 14.7배나 급증했다. 서울 아파트 4곳 중 1곳이 낼 정도로 비대해져 법 취지에도 안 맞는다. 오죽하면 민주당 진영에서조차 “종부세는 정권교체 촉진세였다”(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는 한탄이 나왔을까.

운을 뗀 김에 국회를 주도할 다수당 원내사령탑으로서 여야가 공감대를 갖고 있거나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분야부터 실마리를 푸는 역할을 해줬으면 싶다. 국민연금 개혁도 그중 한 가지다. 현재 재정 안정(여당)이냐 소득 보장(야당)이냐의 힘겨루기로 무산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여야는 국민연금 보험료율(내는 돈)을 현행 소득의 9%에서 13%로 올리는 데 합의했다. 보험료율을 26년 만에 올리기로 한 것도 큰 진전이다. 소득대체율(받는 돈) 때문에 결렬됐는데 국민의힘(44%)과 민주당(45%)의 차이는 겨우 1% 포인트다. 이 정도 차이에 합의를 22대 국회로 미뤄야 하나. 박 원내대표의 역할이 기대되는 이유다. 정치 극단 시기에 일방이 아닌 여야 합의로 주요 개혁을 완성한다면 의의는 결코 작지 않다.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기업 밸류업’도 여야 공히 수긍하는 정책이다.

지난달 미국 의회는 반년간 표류하던 우크라이나 지원 중심의 950억 달러(약 130조원) 안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매듭지은 이가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공화당)이다. 지난해 10월 탄핵된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의 뒤를 이은 그는 원래 ‘찐트럼프’ 강경 보수파였다. 하지만 고립주의 성향의 공화당 의원들 반발을 뚫고 안보 예산안 통과를 이뤄냈다. 법안 통과에 앞서 그는 “(공화당에 좋은) 이기적 결정을 내릴 수 있었지만 (국가를 위한) 옳은 일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처지와 상황은 다르다. 다만 다수당 원내대표가 맡는 미 하원의장처럼 우리 국회 구도상 박 원내대표의 역할과 위상도 그 못지않다. ‘이기적 결정’보다 ‘옳은 일’에 힘을 실을 이유는 충분하다. 총선 참패로 무기력한 여당이나 정부보다 오히려 정책을 견인하거나 뒷받침할 힘과 수단은 거대 야당에 더 많고 그 중심에 박 원내대표가 있다. 21대 국회처럼 정쟁만 만연하다간 국가 미래는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다. 총선이 ‘대통령 국정 심판’에 맞춰 있다면 대선은 ‘수권 능력에 대한 평가’로 이뤄진다. 박 원내대표 주도의 협치와 민생법안 통과가 차곡차곡 쌓이면 이는 지지자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정권 탈환을 위한 길이 될 것이다. 본인이 한 천금 같은 말을 실행했으면 한다. 혹시 아나. 한국의 마이크 존슨이란 평을 들을지.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