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웰컴 투 ‘언니’ 월드

[혜윰노트] 웰컴 투 ‘언니’ 월드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 2024-05-24 00:35

‘의외로 내향형’인, 타고난
매력을 가진 이들이 비로소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현정 유튜브 봤어?’ 최근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오간 이야기다. 물음표에서 여러 가지 함의가 느껴졌다. 배우 고현정이 새로 개설한 유튜브 채널을 봤냐는 단순한 의미도 있겠지만 고현정이 유튜브를 한다는 놀라움이 차지하는 비중도 작지 않았다.

1989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선’ 출신의 톱스타, 재계 유력 인사와의 결혼과 이혼, 그 후 20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신비주의 이미지. 올해로 대중 앞에 선 지 35년, 이혼을 한 것도 벌써 21년이 된 배우에게 가혹할 정도로 갑갑한 시선이었다. 그런 그가 온갖 날것이 횡행하는 유튜브에 나만의 방을 개설한 것이었다. 그것도 힘들다며 침대에 누워 칭얼대고 노트북으로 모니터링하다 습관적으로 미스트를 뿌리고 질끈 묶은 머리로 젊은 시절 자주 가던 일본 식당을 찾고, 좋아하는 배우와 마주치는 게 부끄러워 전속력으로 도망치는 모습으로.

공교롭게도 며칠 지나지 않아 배우이자 DJ 최화정도 개인 유튜브를 개설했다. 1987년 처음 라디오 진행을 시작해 얼마 전 무려 27년을 진행한 SBS ‘최화정의 파워타임’을 떠나게 되었다는 아쉬운 소식을 전한 그의 채널 제목은 ‘안녕하세요 최화정이에요’. 단번에 낭랑한 그의 목소리로 재생되는 타이틀이다.

‘최화정 부엌 공개’나 ‘콘텐츠 회의’, ‘인 마이 백’처럼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진 인물이 유튜브를 시작할 때 접근하기 쉬운 구성으로 출발했지만 그 속을 채우고 있는 콘텐츠가 달랐다. 콘텐츠 회의에서 ‘너희는 회의해. 나는 김밥을 말게’라며 정말 말아버린 오이김밥과 차가운 여름 국수 레시피가 큰 화제를 모았다. 산 지 20년이 되었다는 거대한 에르메스 버킨백보다 그 옆에 놓인 런치백에서 나오는 타바스코소스와 올리브오일에 더 눈이 가는 건 최화정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무슨 소리야, 쌀은 한 톨도 먹지 않았다”를 유행하게 만든 한 끼 네 메뉴의 ‘먹잘알’다운 면모였다.

흥미로운 건 이 두 사람이 개인 채널을 개설하게 된 이유다. 1인 1 유튜브 시대, 이미 채널을 열었어도 한참 전에 열었어야 할 것 같은 고현정과 최화정이 채널을 연 건 다름 아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를 깨달아서였다. 수십 년간 대중 앞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 온 두 사람이 이제야 그 감정을 느낀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미디어를 통해 비치고 소비되던 그들의 부정적 이미지가 떠올랐다. 여전히 카메라와 낯을 가리는 내향적 성격은 정제되지 않는 루머의 온상으로, 타고난 명랑함과 고운 목소리는 비호감과 예쁜 척으로 수렴했다. 이미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정재형과 홍진경의 채널에 각각 출연해 용기를 얻었다는 점도 흡사했다. 고현정은 영상에 달린 좋은 댓글을 보며 ‘엉엉 울었다’고, 최화정은 ‘화정 언니’라는 말이 그렇게나 좋았다고 했다. 별것 아닌 선의의 말들이, 알고 보면 별것 아닌 악의들을 햇살처럼 자연스레 덮어 주었다.

생각해보면 참 모든 게 별 것이 아니다. 조심스럽지만 따뜻하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다’는 고현정처럼, ‘안 되면 접으면 되지!’ 시원하게 외치는 최화정처럼 우선 해보면 되는 거였다. ‘의외로 내향형’인 타고난 매력을 가진 사람들이 비로소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이렇게 반가운 일이었구나 싶다. 딱히 특별한 게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일하고, 먹고, 걷고, 웃고, 우는, 그냥 ‘사는’ 이들의 모습이 좋아 곁에 두고 같이 걸어가고 싶은 언니 리스트에 두 줄을 더했다.

마침 스피커에서 27년 음악 인생 최초로 진한 어른의 사랑 이야기만 골라 꾹꾹 눌러 담은 자우림 김윤아의 솔로 앨범 ‘관능소설’이 눅진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생긴 대로, 또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오늘을 사는 언니들이 좋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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