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무현 정신’ 말하기 부끄러운 정치, 새 국회는 달라야

[사설] ‘노무현 정신’ 말하기 부끄러운 정치, 새 국회는 달라야

입력 2024-05-24 00:30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생태문화공원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 추도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인 어제 정치권의 발걸음은 일제히 봉하마을로 향했다. 추모의 마음이야 같았겠지만 여야가 꺼낸 메시지는 큰 차이를 보였다. 다들 ‘노무현 정신’을 외쳤는데, 그 정신이 무엇인지 해석하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세상을 떠난 지 열다섯 해가 지나서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입맛대로 ‘노무현’을 인용하는 모습은 우리가 과연 그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해석이라기보다 왜곡에 가깝다 싶은 메시지는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왔다. 이재명 대표는 SNS에 올린 글에서 “깨어있는 시민이 함께 만들어낸 참여정치의 시대부터 당원 중심 대중정당의 길까지, 우리가 반드시 나아가야 할 미래”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당원 중심 정당은 추미애 당선인의 국회의장 낙마에 반발하는 극렬 팬덤 ‘개딸’을 달래려 꺼낸 것이다. ‘수박 색출’ 등의 횡포로 정치를 희화화하는 이들에게 휘둘리는 일을 노무현의 길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다.

이것이 어불성설임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분명히 지적했다. “건강한 팬덤이던 노사모는 (지금의 개딸과 달리) 노무현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했다. 노무현이 당선되자 ‘노짱 감독’을 자임했던 사람들이다.” 정치 팬덤의 시작인 노사모는 노무현이 주창한 가치에 공감하는 이들이었다. 이후 문재인의 문파를 거쳐 이재명의 개딸로 내려오면서 가치가 아닌 사람을 추종하는 집단으로 변질돼 의회 정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의 팬덤 정치를 노무현의 참여정치에 빗대는 것은 노사모를 향해 “노무현을 버리라”고 당부했던 그의 뜻을 훼손하는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이라크 파병 등 중요한 결단에서 진영의 경계를 뛰어넘었고, 임기 단축을 감수하며 대연정을 꺼냈다. 노무현 정신을 “통합과 타협의 정치”로 해석한 여당 메시지는 이런 모습에 주목한 것일 텐데, 왠지 공허하게 들렸다. 국정 권한을 쥐고도 극한 대결에 매몰돼 왔고, 총선 참패 이후에도 협치를 위한 노력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5년간 진영 갈등이 극단화해 이 지경에 이른 책임에서 지금의 여권, 특히 현 정권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노무현 정신을 제대로 기리는 길은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를 추모한 이날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한 여당 지도부의 행보가 눈에 띈 것도 그래서였다. 새 국회가 곧 문을 연다. 진영을 넘어 협치의 무대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