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폭군에겐 언제나 이와 같이

[데스크시각] 폭군에겐 언제나 이와 같이

천지우 국제부장

입력 2024-05-29 00:38

슬로바키아 총리는 최근 총을 맞아 죽을 뻔했고, 이란 대통령은 타고 있던 헬기가 추락해 사망했다. 전자는 암살 시도였고 후자는 암살이 아닌 사고사였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백주대낮 거리에서 경호원들이 바로 옆에 있는 가운데 코앞에서 인사하던 노인에게 총을 여러 발 맞았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많은 사람의 뇌리를 스친 생각은 ‘이스라엘이 암살한 것 아닌가’다. 이런 생각이 자연스러워졌을 정도로 중동 정세는 험악하기 짝이 없다.

지금으로부터 159년 전과 56년 전 미국에서 각각 발생한 정치인 암살 사건을 돌아본다. 1865년 4월 15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워싱턴DC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다 뒤통수에 총을 맞았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세 번째 막이 진행되는 동안 날카로운 총성이 들렸다. 한 남자가 ‘Sic semper Tyrannis’(폭군에게는 언제나 이와 같이 하라)라고 소리치면서 2층 귀빈석에서 무대로 뛰어내린 후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극장 뒤편으로 빠져나간 범인은 말을 타고 달아났다.’

고색창연하게 라틴어 대사를 읊은 뒤 말을 타고 달아난 총격범 존 윌크스 부스는 당대의 인기 배우로, 링컨을 암살하기 몇 달 전에는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카이사르 암살을 그린 비극)에 아버지, 형과 함께 출연했다. 부스는 남북전쟁 때 남부연합을 지지했고 링컨의 노예제 폐지에 분노했다. 그는 이민자 배척을 내건 무지(Know Nothing)당의 당원이기도 했다. 극우(인종차별·반이민) 유명인이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을 폭군이라며 죽인 것이다. 그가 외친 ‘Sic semper Tyrannis’는 언제 어디든 갖다 붙일 수 있는 ‘만능 문구’가 아닐까 싶다. 슬로바키아 총리를 쏜 노인의 심정에도 딱 들어맞을 것이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진영의 수괴가 권력을 잡고 있으면 폭군·독재자로 규정하고 못 견뎌 하는 건 159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1968년 6월 6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에서 연설한 직후 암살범의 총탄에 쓰러졌다. 그의 형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지 5년도 지나지 않아 일어난 비극이었다. 소수 인종과 젊은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로버트 케네디는 자신이 피살되기 두 달 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당했을 때 이같이 연설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분열과 증오, 폭력과 무법이 아닙니다. … 그 옛날 그리스인들이 남긴 말에 귀 기울입시다. 인간의 야만성을 다스리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순화시키자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야만성은 다스려지지 않았다. 암살범은 미국에서 12년 거주한 24세 팔레스타인 남성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이었다. 정신장애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로버트 케네디가 이스라엘을 두둔했기 때문에 암살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과 그 뒷배 미국에 대한 팔레스타인과 중동 일각의 증오는 지금도 커지면 커졌지 절대 줄어들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탄압받던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로버트 케네디의 딸 케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당신 아버지 관련 책을 읽다가 두세 번 울었다’고 적었다. 암살 위협에 시달리던 나발니는 지난 2월 시베리아 감옥에서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이처럼 비극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어지고 반복된다. 이 세상의 삶은 도무지 순화되지 않는다.

천지우 국제부장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