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넌 나의 구원이었어

[세상만사] 넌 나의 구원이었어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입력 2024-05-31 00:37

‘쌍방 구원 서사’는 요즘 방송업계에서 자주 마주치는 문구다. 상처나 결핍을 가진 두 인물이 만나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다. 구원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내세울 정도이니 콘텐츠가 담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쌍방 구원은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이해관계와는 다르다. 초반에는 주인공 한 사람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은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온전한 행복을 찾게 된다는 스토리 라인을 가진다.

지난 28일 종영한 시간여행 로맨스물 ‘선재 업고 튀어’는 최근 드라마 중 가장 흥행한 쌍방 구원 이야기다. 열아홉 살 때 사고를 당해 걷지 못하게 된 서른네 살의 솔(김혜윤)이 자신에게 삶의 의지를 되찾아준 톱스타 선재(변우석)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그의 죽음을 막기 위해 15년 전으로 회귀한다.

과거로 돌아간 솔은 사고당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 바로 선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차례 과거를 바꿔도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를 향한다. 선재는 매번 솔을 구하다 죽음을 맞이하고, 솔은 그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계속해서 시간을 거슬러간다.

히어로물의 탈을 쓴 쌍방 구원 서사도 있다. JTBC에서 방영 중인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는 현대인의 질병 때문에 초능력을 쓸 수 없게 된 가족이 등장한다. 이 집안의 아들 귀주(장기용)는 행복했던 과거로 시간 이동을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겐 몇 번이고 돌아가고 싶은 행복한 순간이 다른 누군가에겐 불행한 순간이 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초능력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된다.

귀주는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집착하듯 과거를 여행한다. 그러다 딸이 태어나던 행복한 날 귀주를 대신해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 동료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귀주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날로 돌아가지만 매번 구출에 실패한다. 무력감에 우울증에 빠지고 초능력마저 상실했던 귀주는 다해(천우희)와 사랑하게 되면서 초능력을 회복한다.

다시 시간 이동을 할 수 있게 된 귀주는 화재 현장에 동료를 구하러 갔다가 동료의 부탁으로 자신이 다해를 구해냈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된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화재 사건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까지 안고 살아가던 다해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희생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자신의 삶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 시에서도 쌍방 구원은 하나의 큰 줄거리다. 나태주 시인이 최근 낸 시집 ‘그래, 네 생각만 할게’에 수록된 ‘아들에게 2’는 ‘너 또한 누군가의 숲과 바다에 바람이 되어줄 때가 있다는 걸 꼭 기억해다오’라고 노래한다. 제 몸이 없는 바람이 숲을 만나 몸을 흔들 수 있고 바다를 만나 파도를 만들 수 있듯이 사람도 혼자 힘만으로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인간은 서로를 구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렵다. 장르는 달라도 수많은 이야기는 결국 혼자 힘으론 살 수 없다는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 사람을 구하는 것도, 망치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모두가 자기 잇속만 차리는 듯한 세상이지만 인간에겐 나 아닌 사람을 구하려는 선한 본능도 있음을 강조한다.

노래 가사나 영화 대사로 “너는 나의 구원”이란 말이 종종 나온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시대에 서로 구원이 되고, 남을 구해 나를 구한다는 건 어쩌면 판타지 같은 이야기다. 그래서 시간을 거스르며 타인을 구하려는 주인공 모습이 더욱 울림을 주는 것 아닐까. 사람들이 쌍방 구원 서사에 몰입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기까지 한 요즘이다.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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