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새 ‘통일 원칙’ 생각할 때다

[글로벌 포커스] 새 ‘통일 원칙’ 생각할 때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입력 2024-06-03 00:33 수정 2024-06-03 00:33

지난달 27일 서울에서 한·일·중 정상회담이 열린 직후 북한은 2호기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다. 하지만 2분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다. 27일 자정이 막 지난 시간 휴대폰에서는 ‘북한 대남전단 추정 미상물체 식별, 야외활동 자제’라는 위급재난 문자메시지가 떴다.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오물 풍선 살포, GPS 교란 공격까지 북한은 무슨 의도로 이런 연쇄 도발을 감행하는 것일까? 4년반 만에 열린 한·일·중 정상 회담을 방해하고 최신 군사기술을 과시하려던 계획이 실패하자 남한을 향해 분풀이 도발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북한은 연쇄 도발을 통해 한국 사회 내부에 불안과 혼란을 야기할 고도의 정치심리전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주말 제주도에서는 관훈클럽 주최로 ‘신한민족 공동번영’을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북한은 더 이상 남북이 한 민족이 아니라고 하고, 북한의 끝없는 도발로 공동번영은커녕 공동파멸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한민족 공동번영은 과연 가능할까. 세미나에서는 통일 당위론과 2개 국가론에 입각한 현실적인 통일 포뮬러(원칙·공식) 재구성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최근의 국제정세는 통일 관련 논의를 할 여건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세계 질서의 파편화와 동시에 새로운 진영화가 진행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같은 큰 이슈들에 묻혀 한반도 문제를 논의할 동력은 거의 사라졌다.

북한은 현재의 국제정세를 신냉전, 다극적 질서로 규정하고, 그 속에서 전개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북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나 북·미 관계 개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현실 속에서 미·중·러 강대국 간 경쟁과 갈등이 특징인 현 국제정세가 북한에는 오히려 정상국가로서의 외교 확대 가능성 증가를 시사한다고 보는 듯하다. 그 결과가 바로 북·중·러 밀착이다.

남북한은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한 이후 국제적으로는 두 개의 국가로 존재하는 특성을 가지는 한편 같은 해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의 성격도 동시에 가진다. 하지만 이제 북한은 그러한 특수관계를 거부하고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라는 입장을 천명하고 적대적 도발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통일정책이 갈 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비현실적 통일 당위론 명분을 재검토해 ‘두 국가론’에 입각한 통일 방안을 마련하는 등 현실에 맞는 대북·통일 정책을 재정립해야 한다. 북한은 명분상 ‘2체제’ 유지의 ‘북한식 연방제’를 주장해 왔지만, 속내는 이미 남북 체제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 사실상 두 개의 국가 노선을 추진해 왔다. 따라서 현실적인 통일 논의나 새로운 한반도 공동번영안을 논하려면 남북한이 독자적 발전의 길을 추구하고 있고, 사실상 별도의 국가로 존재하는 현실 인정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북 관계의 정상화, 즉 정상적 국가 대 국가 간 관계로의 발전은 국가 간 보편적 거래 방식에 따라 호혜적 관계를 축적할 때 구현 가능하다. 이를 위해 상대의 체제 인정과 존중이 실질적, 제도적으로 구현되는 통일정책이 필요하며 통일 시까지 사실상의 ‘국가 대 국가’ 관계라는 기초 위에서 남북 관계를 관리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통일대전략에 대한 범국가적 컨센서스 구축이 필요하다. 대외적으로는 북한을 국제사회에 포섭하는 글로벌 통일외교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비록 통일을 논하기엔 여건이 더 어려워졌지만 통일을 포기하기보다는 변화된 상황에 맞는 새 통일 전략을 수립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