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해질 것이요

[여의춘추]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해질 것이요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입력 2024-06-07 00:38

방송사의 지난 총선 보도·논평
전보다 편파적이란 인상 짙지만
엄격·근엄·진지 방송심의 잣대
과연 시대에 맞는 것인지 의문

선거는 정치 를 맘껏 얘기하는
토론의 시간이자 말의 잔치
풍자·희화화 등 논평의 자유는
좀더 폭넓게 허용하면 좋을 듯

마태복음 12장을 읽다가 뜻밖의 구절을 발견했다. 25절 하반절이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이 대목을 수백번은 읽었을텐데 처음 눈에 띄었다. 쌈박질만 하는 대한민국 정치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정치적 갈등을 점잖게 질타하는 글에 인용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 회의록을 읽었다(방송통신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전문이 공개돼 있다).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 귀신을 쫓기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편파 방송, 편파 심의라는 귀신. 귀신을 열심히 쫓고 있는 분들에게는 “왜 스스로 분쟁하여 나라를 황폐하게 만드냐”고 손가락질하는 내가 바리새인처럼 보이겠다 싶었다.

22대 총선 선방심위는 열심히 일했다. 가장 높은 징계인 관계자 징계가 14번이었고, 모두 30건의 보도에 법정 징계를 했다. 앞선 21대 총선 선방심위의 경우 법정 징계가 2건뿐이었는데 모두 가장 낮은 주의 단계였다. 이를 두고 비판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징계가 많았다고 해서 선방심위가 편파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백선기 선방심위원장은 마지막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심의) 결과에 대해서는 제3자인 언론이 어떻게 평가하든 그건 상관이 없고요. 우리는 22대 선방심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우리는 전문적 지식을, 그다음에 학문적 양식 그다음에 여러분이 갖고 있는 식견을 그대로 반영해서 오늘까지 이르렀다라고 하는 걸 위원장으로서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나는 시청자이자 청취자로서 방송사들의 선거 보도와 논평이 여당 쪽이든 야당 쪽이든 과거보다 더 편파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라디오의 논평을 듣다가 너무 거칠고 단정적이어서 채널을 돌려버릴 때가 많았다. 심지어 한 방송사의 진행자는 총선 직전인 2월까지 뉴스 방송을 진행했다. 선방심위의 징계가 역대급으로 많았다고 하지만, 방송의 공정성 역시 역대급으로 흔들렸다.

그러나 선방심위가 언론의 비판도 무시하고 엄격 근엄 진지한 잣대만 내미는 게 시대에 맞는지는 의문이다. 소수의 지상파 채널이 실시간 논평을 독점하던 때의 공정성 잣대가 종편 유튜브 OTT 등 미디어 대범람 시대에도 과연 유효할까. 이번 총선 개표방송만 해도 유튜브에서 KBS와 SBS 개표방송을 본 사람은 각각 5만, 8만명이었는데, 김어준씨 유튜브 채널 접속자는 16만명이었다. 시민들은 기성 매체 밖의 검증되지 않은 유튜브 채널에서 정치적 견해를 얻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온갖 억측과 왜곡이 범람한다. 선거가 끝날 때마다 제대로 된 근거도 없는 개표조작론이 판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잔치이자 말의 잔치다. 정치 문제를 맘껏 얘기하는 토론의 시간이기도 하다. 중립성과 형평성을 강조한 무미건조한 방송이 되도록 하기보다는, 상식선의 공정을 요구하되 풍자와 희화화 같은 논평의 자유는 폭넓게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선방심위가 오히려 권위를 좀 더 내려놓았으면 좋았겠다. 일기예보에 등장한 파란색 1번을 징계하거나, ‘김건희 특검’에서 여사 호칭을 뺐다고 주의를 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부 선방심위 위원은 해당 방송사가 평소 편파적인 보도를 해왔다는 판단에서 방송의 의도를 추측해 심의했다. 위원들의 전문 지식, 양심, 식견을 그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전문적 지식, 양심, 식견을 지니고도 다른 의견을 가진 언론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선방심위 내부에서도 징계 여부와 수위를 둘러싸고 이견과 논쟁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선 선방심위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판단하는 게 맞았다. 애석하게도 선방심위는 합의점을 찾기보다 다수결로 징계를 결정했다. 좀 더 너그럽게 서로의 주장을 경청하고 타협할 수 없었을까. 서로가 귀신도 아닌데,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백선기 위원장이 과거 쓴 글에도 이런 주장이 있다. “우리 언론의 지나친 공명선거 주목이 집권 세력의 승리와 그에 따른 집권 구도 고착을 가져온 실례들에 비춰 볼 때, 지나친 공명선거 강조는 다소 피해야겠다… 지나치게 공명선거에 초점을 맞춰 선거 본래의 의미를 약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한국 신문의 선거 보도에 있어서의 공정성’, 1992년 3월)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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