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판사 저격, 그리고 유감 표명

[돋을새김] 판사 저격, 그리고 유감 표명

김나래 사회부장

입력 2024-06-11 00:32 수정 2024-06-11 00:32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8일 페이스북에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60대 의사에게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원심 판결을 유지한 항소심을 언급하며 쓴 글이다. 그의 발언이 공개되자 비판 여론이 일었다. 임 회장은 앞서 부산대 의대 재학생 등이 낸 집행정지 항고심 직후에도 판사를 공개 저격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겨냥해 “대법관 자리를 두고 정부 측에 회유당했을 것”이란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로 인해 결국 한 시민단체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했다.

언제부턴가 쟁점 사안에 대한 판결이 나올 때마다 판사를 공개 저격하는 현상이 생겼다. 정치권에서 자기편에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직접 판사를 비판하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지지자들 역시 동조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판결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나 귀담을 만한 비판이 아니라 판사 개인의 신상을 털거나 조롱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해 12월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판사 개인의 신상털기’와 같은 방식의 공격 행위에 대해 법원 차원에서 대응하기로 했다. 실제로 앞서 서울고법이 입장을 낸 데 이어 창원지법에서도 10일 임 회장의 행위가 재판장에 대한 모욕이라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내놨다. 창원지법은 “해당 협회장이 SNS에 형사판결을 한 법관의 사진을 올리고 인신공격성 글을 게시한 것은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 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판사를 향한 저격과 법원의 유감 표명으로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는 듯하지만 이렇게 끝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가 된 사건은 2021년 1월 경남 거제의 한 의원에서 근무하던 의사가 80대 파킨슨병 환자에게 구역·구토 치료제인 멕페란 주사액을 처방한 뒤 환자에게 발음 장애, 전신 쇠약 등 부작용이 생기면서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건이다. 1심은 환자의 병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멕페란 주사액을 처방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문진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다는 의사와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과 판결에 대한 의료진의 반응은 일반인의 것과는 거리가 있다. 의사들은 나름의 근거를 갖고 실시한 의료행위 결과에 대해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이번 전공의 집단행동을 계기로 의료계 문제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실제로 의료소송에 대한 압박이 의사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게 됐다. 아마 이런 이유로 임 회장 또한 그런 글을 썼을 것이다. 그 심경 또한 모를 바는 아니다. 만약 임 회장이 저격 글이 아니라 의료소송과 관련된 의사들의 상황을 설명하는 글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조금은 의사들의 고충과 현실을 대중이 더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한덕수 총리는 9일 브리핑에서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약속했다. 그는 한 대학병원의 미숙아 사망사고와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이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은 일을 거론하며 “의료소송의 부담은 의료진과 환자 모두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자 필수의료를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또 민사 1심의 평균 소요기간은 6개월인데 의료소송은 26개월이나 걸린다면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을 마련해 올해 안에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의료계와 정부는 여전히 강대강 대치 중이다. 언제쯤 이들이 함께 앉아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에 대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김나래 사회부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