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시작된 삐라戰… 투항 권유→ 체제 우위 선전→ 오물 살포

6·25 때 시작된 삐라戰… 투항 권유→ 체제 우위 선전→ 오물 살포

대남·대북전단의 역사

입력 2024-06-15 05:05
대북·대남 심리전 수단 중 하나인 전단 살포는 남북 관계에 따라 중단됐다가 재개되기를 반복했다. 북한이 2016년 대남 풍선으로 날려 보낸 오물 봉투. 지난 2일 경기도 안산시의 한 주택가에 북한이 살포한 오물 풍선이 떨어져 승용차 앞유리가 박살 나 있다(왼쪽 사진부터).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달 28일 밤 풍선을 대량으로 날려 보냈을 때만 해도 그 안에 ‘삐라(전단)’가 들어 있으리라는 예측이 많았다. 남북은 지난 수십 년간 서로를 향해 삐라를 넣은 풍선을 띄워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날린 풍선에는 담배꽁초와 폐종이, 천 조각, 비닐 따위의 오물이 들어 있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보낸 오물이야말로 삐라 그 자체이자 메시지라고 했다. 최영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교수는 “민간단체는 대북전단에 담긴 물품을 인도주의적 물품이라고 생각했지만, 북한은 그게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효과 측면에서 북한의 의도는 적중했다. 오물 풍선은 기존의 삐라 이상으로 한국 사회와 정부의 반향을 끌어냈다. 삐라 전시회를 열기도 한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은 “북한은 내부적으로 한국 사회의 반응을 충분히 모니터링했을 것”이라며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서명 이후 처음으로 ‘삐라가 먹히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관계 풍향계, 삐라

삐라는 계산서나 전단지 등을 뜻하는 빌(bill)의 일본어 발음 ‘비라’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남북 간 훈풍이 불 때면 자제키로 했다가도 관계가 악화되면 어김없이 부활했기 때문에 남북 관계의 풍향계로도 불린다.

한반도에 삐라가 대량 살포되기 시작한 건 6·25전쟁 때다. 내용은 적에 대한 투항 권유나 적 점령지 시민들에 대한 소개령, 이념 공세 등 다양했다. 당시엔 군이 항공기를 타고 전선을 넘나들며 박스에 실어놓은 삐라를 무더기로 뿌렸다. 남한과 유엔군이 25억장, 중국과 북한이 3억장을 살포했다. 당시 프랭크 페이스 미국 육군부 장관은 “적을 삐라로 파묻으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6·25전쟁 직후인 1950, 60년대의 삐라 살포는 체제 우위를 자신했던 북한이 주도했다.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고 체제 우수성을 과시하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 당시 남북은 경쟁적으로 월남·월북을 독려했다. 북한이 대남용으로 보낸 한 삐라에는 ‘공화국 공민의 권리와 자유 보장, 직업·직장 알선, 고급 주택 무상 배정, 생활보장금 1억1100만~3억3300만원, 상금 185억원’을 보상으로 내세웠다. 이 무렵부터는 살포 수단으로 풍선이 주로 활용됐다. 간첩을 활용한 직접 살포 방식도 동원됐는데, 당연히 우리 정부는 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1980년대 중반 들어 한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북한의 전단은 힘을 잃었다. 우리 측이 북한으로 보낸 삐라에는 백화점이나 공원 사진, ‘자가용 1000만대 생산’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여성 연예인이나 모델의 사진도 들어갔다.

‘상호 비방 중지’는 말뿐

남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2000년 남북 상호 비방 중지에 합의했다. 특히 2004년 6월 남북군사합의 결과로 정부 차원의 대북전단 살포가 중단됐다. 여기에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북전단 등의 적대행위를 중단키로 하면서 정부와 군이 공식적으로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일은 없어졌다.

물론 남북 관계가 얼어붙을 때마다 삐라 살포는 이어졌다. 2017년 10월에는 청와대 경내에서 대남전단이 발견되기도 했다. 전단에는 ‘김정은 최고영도자님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단호히 성명’ 등의 문구가 적혔다.

대남 삐라가 계속 뿌려지는 것과 별개로 메시지는 갈수록 생명력을 잃었다. 진 소장은 “가령 2010년대 북한이 살포한 삐라 내용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부패상이었는데, 그걸 받아든 사람들이 ‘내가 (북한 뜻대로) 어떻게 해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은 2020년에도 삐라 1200만장을 찍었다고 밝혔는데, 실제로 살포하진 않았다.

‘뇌관’은 대북 민간단체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6일 경기 포천에서 대북전단 20만장과 1달러 지폐, 한국 드라마 등이 저장된 USB를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한에 보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한국은 정부 주도의 대북전단 살포가 잠정 중단됐던 2004년 이후 탈북민들을 중심으로 한 민간단체가 삐라 살포를 주도해 왔다. 이들 단체는 풍선에 북한 사회의 실상을 알리는 글을 적고 한국 가요가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 달러화 지폐, 생필품 등을 실어 날려보냈다.

북한은 민간단체가 날리는 삐라에 극히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북한과의 여러 회담에 관여했던 정부 관계자는 “북측은 ‘군인들이 고향을 헐뜯는 글이 적힌 대북전단에 자극을 받기 때문에 자꾸 전단을 보내면 자기들도 막을 수 없다.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니 자제해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북한은 2020년 6월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을 때도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들었다.

문재인정부는 2020년 남북관계발전법을 통해 대북전단 살포나 대북 확성기 방송을 금지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최 교수는 “대북전단은 남북의 문제이면서 우리 안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예전처럼 통일부가 나서서 전단 살포 단체에 살포 자제를 요청하는 한편 이들 단체와 접경지역 주민들 간 소통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택현 박준상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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