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할머니의 모시 적삼

[살며 사랑하며] 할머니의 모시 적삼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입력 2024-06-14 00:35

셔츠를 고르는 데 번번이 실패한다. 두 해도 채 넘기지 못하고 버리기 일쑤다. 이번에야말로 좋은 소재로 제대로 만든 여름 셔츠를 고르고 싶다. 유월 더위가 제법이니 땀이 달라붙지 않는 쾌적한 셔츠를 골라보자. 어깨선도 맞고 몸에 딱 붙지 않는 셔츠. 화려한 무늬나 큼직한 로고가 박히지 않은 단순한 디자인이라야 한다. 따로 다림질하지 않아도 되는 원단이라면 더욱 좋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나름대로 깐깐한 기준을 세워 셔츠를 골라도, 정작 손이 가는 건 오래 입어서 잘 길든 낡은 옷이니 말이다.

시원한 여름옷을 떠올리면, 모시를 즐겨 입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참빗으로 빗어 장식 없는 민비녀로 쪽을 진 할머니. 숱이 적어 쪽진 머리카락 한 움큼이 마늘 한 통보다도 작던 할머니. 할머니가 입던 모시는 풀이 빳빳하게 선 모시가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주름이 잡힌 모시였다. 등허리에 솟은 땀방울이 호졸근하게 젖어들기도 했던 모시 적삼. 그 소재가 마늘껍질처럼 얇고 고왔다. 모시를 입고 오방색 부채를 부치며 마을회관으로 걸어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모시를 떠올리면 아스라한 애상에 젖어드는 까닭은 왜일까. 손톱과 무릎이 까지도록 실을 꼬며 살았던 할머니의 일생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오래전 세상을 뜬 할머니를 생각하면 빈 들판을 낮게 날아가는 백로가 떠오른다. 그 무슨 신비로운 이야기를 붉은 실처럼 물고 날아가는 백로. 그 흰빛은 깨끗하고도 서늘한 슬픔의 빛이다. 할머니의 모시와 같이 나도 어울리는 셔츠를 갖고 싶다. 여름 더위가 물러나면 할머니는 좀먹을까봐 습자지에 모시를 싸서 장롱에 개어두었다. 실과 실 사이에 숨구멍이라도 통하는 듯 시원한 모시. 그 가슬가슬한 촉감에 볼을 대고 싶다. 당신에게도 이야기를 연결해 주는 옷이 있는가. 곱게 개어 놓은 옛이야기가 있는가.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