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아직도 논쟁 중인 대한민국 국가정체성

[국민논단] 아직도 논쟁 중인 대한민국 국가정체성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24-06-17 00:34

조선, 명나라를 君-臣에 더해
아비-자식관계로까지 승격
국가정체성을 절대이념화
병자호란 '삼전도 치욕' 초래

한국은 여전히 정체성 혼돈
척화에 가까운 한미혈맹파 대
주화 근접 국익우선파로 양분

동맹 고려하면서도 자기외교
이게 조선의 실패가 주는 교훈

한반도 통일 이래 국왕이 외국 군주에게 직접 항복한 사례는 병자호란 때 삼전도 항복이 유일하다. 요즘엔 흔히 척화론을 헛된 명분론으로 간주해 비난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간단하지 않다. 질 줄 뻔히 알면서도 전쟁을 불사한 이유를 그저 헛된 명분 때문이라 간단히 치부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표현이 당시 사료에 숱하게 등장하는데, 바로 조선이 추구하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없다면 차라리 망해도 좋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나라의 존망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조선의 국가정체성이었다. 왜란 전부터 명나라와의 관계는 기존의 군신 관계에 부자 관계를 더한 군부(君父)·신자(臣子) 관계로 절대 이념화한 상태였다. 그런데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면 신하가 먼저 관계를 끊을 수 있었던 데에 비해 아비가 아무리 아비답지 못해도 자식이 먼저 부자 관계를 끊을 수는 없었다. 유교 사회에서 부자 관계는 상황을 초월하는 절대가치였고 그것이 바로 당시 조선의 국가정체성이자 레종 데트르였다. 따라서 조선이 명과 청 사이에서 자국의 손익을 계산하며 외교 노선을 펴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아비(명)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식(조선)이 할 일은 즉시 달려가 아비를 위해 도적(청)과 싸우는 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정체성 문제는 지금도 여전하다. 근 400년 전 조선에서는 국가정체성이 지나치게 절대 이념화한 것이 문제였다면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국가정체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매우 약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해방과 함께 분단과 전쟁이라는 핏빛 형극이 현대사에 짙게 드리운 탓에 국가정체성을 놓고도 아직껏 국민적 합의가 명확하지 않다.

한국이 주체적 독립을 이루지 못한 여파는 너무나 컸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분단과 전쟁은 필연적으로 남북한 모두에 국가정체성 문제를 남겼다. 대한민국의 국시가 한때 반공이었던 사실은 한 좋은 예다. 한국사 교과서에서 ‘민주주의’ 앞에 반드시 ‘자유’라는 수식어를 넣어야 한다는 논쟁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이며 어떤 나라이어야 하는가, 라는 국가정체성 문제의 충돌이었다.

일전의 건국절 파동, 한국사 교과서 파동, 최근의 홍범도 흉상 및 이승만 논쟁도 모두 국가정체성 문제와 직결된 사안이다. 학계에서 한때 뜨거웠던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논쟁도 비슷한 자장 안에서 발생했다. 한국의 근대화를 그저 일본 덕으로 설명해 버리는 뉴라이트 그룹도, 한국의 근대화를 자생적으로만 보려는 민족주의 계열도 학문보다는 이념으로 역사를 다루는 데에 아주 익숙하다. 이처럼 이념 논쟁이 여전한 점은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이 무엇인지 아직 논쟁 중임을 잘 보여준다.

현재 한국에서는 정세 변화와 무관하게 한·미‘혈맹’을 절대시하는 사람들이 한 축을 형성한다. 대한민국은 미국 덕분에 탄생했고, 미국 덕분에 공산 세력으로부터 살아남았고 미국과 일본 덕분에 경제 발전에 성공했으니 앞으로도 상황을 초월해 미국을 적극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이들이다. 한·미‘동맹’은 굳건히 하되 정세 변화에 따라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국익에 따라 외교 노선을 고민하자는 자들이 다른 한 축을 이룬다. 굳이 말하자면 전자가 예전 척화론에 가깝고 후자가 주화론에 가깝다.

물론 이 가운데 어느 진영을 선택하는지가 문제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 노선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다만 한국은 진영 논리와 편 가르기 현상이 너무 심해서 문제인데, 이는 국가정체성이라는 공통분모가 너무 약하다는 점과 상통한다. 분단의 지속이라는 형세가 획기적으로 변해 우리가 평화통일을 달성한다면 모를까 그렇게 하지 못하는 한 한국의 국가정체성 문제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외교란 상황에 따라 융통성이 있어야 하며 실제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제무대에서 어떤 외교 대상을 ‘아버지’로 여긴다면, 그 나라에 외교란 존재할 수 없을 테다. 자식이라 해도 어릴 때라면 모를까 성인(선진국)으로 성장한 후에는 자기 노선을 펼 수 있어야 한다. 동맹 관계를 고려하면서도 자기 외교가 있어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제무대에서는 그것이 주권국의 모습이다.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