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 파괴하는 ‘법대로 하자’

[시론] 정치 파괴하는 ‘법대로 하자’

신현기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입력 2024-06-18 00:33

치고받고 싸우는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이기고 있을까 알려면 각자 하는 말을 들어보면 된다. “너 몇 살이야?” 먼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밀리는 쪽이다. 싸움의 본질과 하등 상관없는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끌어오기 때문이다. 또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말하는 쪽도 허세를 부려야 할 만큼 불리하다는 뜻이다.

반면 “법대로 하자” 이렇게 말한다면 적어도 상황이나 기세에서 밀릴 게 없다는 뜻이다. 또 이런 뜻도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너랑은 말하고 싶지 않아. 법대로 하기 싫으면 양보하든가.’

이 ‘법대로 하자’는 말이 지난 12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야권 단독으로 열린 22대 전반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터져 나왔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지 관례국가가 아닙니다. 관례로 법을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법사위는 국회법에 따라 운영하겠습니다.” 윤석열정부 들어 법치국가가 고생이 많다. “법률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폭넓게 진출하는 것이 법치국가”라고 말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2022년 6월 8일)이 법치국가의 1차 수난기였다면 ‘법대로’ 하는 것이 법치국가라는 정 의원의 말은 2차 수난기라고 할 수 있다.

법치국가의 본래 취지는 어떤 권력자도 법 위에 설 수 없게 함으로써 법에 의한 자의적 통치를 막는 것이다. 그러니 법률가가 국정에 참여한다고 해서, 또는 ‘법대로’ 한다고 해서 법치국가가 되는 게 아니다. 그 법 아래 복종하려는 권력의 자기 절제가 없으면 아무리 법대로 해도 법치국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절제하지 않는 권력이 강요하는 ‘법대로’는 강자의 논리이거나 다수의 횡포일 뿐이다.

민주화 이후 국회가 당사자 간 합의에 따른 관례를 발전시켜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하면서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졌다. 당시 야3당의 YS, DJ, JP가 모여 원 구성에 대해 논의했다. 직전 12대 국회까지 여당인 민정당이 상임위를 독식했으니 이번에는 야권이 상임위를 독식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나 당시 세 거물의 선택은 달랐다.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운영위원회는 여당이 맡도록 합시다.” 이후 국회 운영위원장은 여당 원내대표가 맡는 것이 관례가 됐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사회적 협력이 이뤄지려면 사람들이 서로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도록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규칙과 관습,즉 묵약(convention)이 필요하다고 했다. 묵약은 법률과 같은 명시적 계약은 아니지만 모든 당사자가 반복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그것을 따르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내가 묵약을 지키는 이유는 상대방도 그 묵약을 지킬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모두가 이득을 본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는 단 한 표라도 더 받는 쪽이 행정부 권력을 독식하는 게임의 룰이 자리잡았지만 국회에서는 권력을 공유하는 관례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의회에서 다수파가 독식하지 않는다는 이러한 관례가 대한민국을 법치국가로 만드는 것이지, ‘법대로’ 한다고 해서 법치국가가 되는 게 아니다.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어느 날 한 지지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당신의 눈빛은 왜 그렇게 현명하면서도 슬퍼 보이나요?” 링컨은 이렇게 답한다. “저는 제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 걸 아니까요.” 모든 것을 독식할 수 없는 것을 아는 민주주의자의 눈빛은 슬프다. 이에 비해 지금 다수파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눈빛은 너무 사납고, 확신에 차 있다. 제발 눈에 힘 좀 빼시라!

신현기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